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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09. 2024

50대 남자의 발리 서핑 분투기


50세가 넘어 서핑이라니, 나 스스로 생각해도 좀 위험한 시도가 아닌가 싶었다. 특히, 이곳 짱구 비치를 처음 본 순간 그 집채만 한 파도의 거대한 크기를 보고서는 더욱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핑은 발리 여행의 첫 번째 버킷리스트였기에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구글맵을 돌려 짱구비치 근처의 서핑스쿨을 검색해 적당한 평점의 장소를 찾았다. 강사는 친절했고 성의 있게 나를 가르쳤지만, 짱구 비치 같은 거친 파도를 처음 접했던 나는 파도 위에 오르기는커녕 온통 구르고 바다에 내동댕이 쳐질 뿐이었다.



결국 나는 좀 더 파도가 잔잔하다는 쿠타 비치로 향했고 그곳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나의 서핑 선생님인 린은 내가 살고 있는 제주에서도 지낸 경험이 있었던 까닭에 우리말도 잘했으며 참을성 있는 태도로 차분하게 지도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기초부터 차근차근 서핑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서핑은 이론을 안다고 그대로 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 없이 많은 파도에 패대기 쳐지고 셀 수 없는 양의 바닷물을 먹어야  수 있는 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기술이었다. 게다가 운동신경과 체력이 한참 때인 젊은 이들도 그러할 진대 50넘은 중년인 내게는 정말 쉽지 않은 운동이었다.



어느 날 린에게 물었다.



"혹시 나이가 50대인 사람들도 서핑을 배우러 와?"



"응, 드물긴 하지만, 가끔 와. 한 번은 60살이 넘은 사람도 온 적이 있는 걸?"



어쨌든 많이들 오는 모양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나이 먹고 괜한 짓하는 거 아닌가 싶은 불안감도 들었다.



그에게 서핑 수업을 받은 첫날, 너무 많은 바닷물을 먹어서 그 엄청난 소금기에 속이 매스껍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 후로도 파도를 피하는 방법을 몰라 이마로 파도를 그대로 받는 바람에 목이 뒤로 꺾여 목 뒤에 통증이 생기기도 했다. 잘못했다가는 목디스크가 재발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서핑에 대한 의욕을 꺾는 가장 주된 원인은 좀처럼 늘지 않는 실력이었다. 거의 10차례 정도 수업을 받았음에도 좀처럼 보드에서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이를 서핑에서는 '테이크 오프'라고 하는데 오히려 첫날에는 꽤 많은 성공을 거둔 동작이었다. 하지만, 강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오히려 보드에 서는 횟수는 더욱 줄어들고 있었다. 내 지병인 허리디스크로 인한 통증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너무 급하게 일어나지 말고 천천히 일어나 보세요."



강사 린은 내게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라고 충고를 했지만, 일단 파도에만 서면 그 무서운 속도에 모든 걸 깡그리 잊어버리는 나였다.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걸 배워.'



'그냥 좋아하는 수영이나 열심히 하자고.'




결국, 나의 서핑에 대한 의욕은 서서히 꺾이기 시작했고 아픈 허리를 핑계로 서핑 강습도 더 이상 받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제, 짱구 비치에서 이곳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모래사장에 비치 베드를 대여하고 친구와 맥주를 마시는데 수평선 가득 서핑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거친 파도에 넘어지고 내동댕이 쳐지면서도 굴하지 않고 손을 저아가며 계속 파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서핑이 하고 싶어졌다. 혼자 타 본 경험은 한 번도 없었으면서 무슨 용기가 났는지 나는 보드 대여점에서 5천 원가량을 주고 초보자용 롱보드를 빌렸다. 내가 초보자라고 말을 하니까 그가 뭐라 뭐라 했다. 내가 그의 영어가 이해가 안 되어 재차 질문을 하자, 해안가에서 멀리 타라고 이야기한다. 해안가에 암초가 많은 까닭에 보드가 상할 염려가 있으니 되도록 먼바다에 나가서 서핑을 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 혹시라도 보드가 상하면 변상을 해야 한다는 친절한 멘트도 잊지 않았다.



'이런, 가뜩이나 초보자인데 먼바다에 나가서 타라고? 이거 잘못하면 죽는 거 아냐?'



괜히 보드를 빌린 것 같다는 후회가 몰려오기 시작했지만, 이대로 물러나긴 좀 아까웠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서핑을 하기 위해선 해안가에서부터 노를 젓는 동작인 패들링을 통해 파도가 이는 곳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파도를 정면으로 통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까닭에 파도가 잔잔한 파도의 옆 쪽인 채널링을 통해 돌아서 들어가야 한다.



분명, 유튜브 강의에서 몇 차례나 본 것인임에도 막상 바다에 혼자 나가려니 머릿속이 하얘지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시작부터 파도에 밀리기 시작하더니 먼바다까지는 가보지도 못하고 해안가로 도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 파도에 내동댕이 쳐지는 모습이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어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나 누군가 지켜보는 사람이 없나 싶어서 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그 해변에서 내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두렵고 야속한 파도를 노려보면서 다시 한번 바다로 입수했다. 부서지는 하얀 파도가 마치 거대한 괴물의 혀처럼 나를 조롱하듯 날름 거리고 있었다. 마치 파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네 까짓 게 어딜 감히 올라타려고?"



천신만고 끝에 도달한 파도 근처에는 이미 많은 서퍼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도달한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뿐, 도대체 어떤 파도를 타야 하는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몇 차례 다가오는 파도를 타기 위해서 테이크 오프를 시도해 보았지만 모두 실패하고 바닷물에 처박히기만 했다.



급기야, 체력이 소진된 나는 꿀꺽꿀꺽 바닷물을 먹기 시작했고 발이 닿지 않는 깊은 수심은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수영을 오랫동안 해오긴 했지만 발이 닿지 않는 깊은 곳에서의 수영 경험은 별로 없었기에 당황을 한 탓이었다.



결국, 오늘은 이쯤 해서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역시 만만치 않았다. 손으로 노를 몇 번 젓고 나면 번번이 집채만 한 파도가 덮쳐 나를 냉동댕이 쳤다.



"그래, 중요한 건 꺾여도 다시 일어나는 마음이쟎아."



나는 이곳 브런치에도 적었던 '중꺽다마'를 외치며 온몸의 힘을 짜내어 패들링을 했다.



그렇게 간신히 해변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한 게 오면서는 오늘은 그만하자고 수십 번을 마음먹었던 내가 막상 해변에 도착하고 나니까 다시 한번 도전할 의 욕이 생긴 것이었다.



잠시 휴식을 가진 나는 다시 파도를 향해 패들링을 하기 시작했다.



집채만 한 파도가 나를 발견하고는 저 멀리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고.'



어디서 그런 깡이 올라오는지 나의 패들링에 더욱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적어도 그 순간 내게 있어 저 파도는 지난날 나를 괴롭혔던 미움과 증오, 두려움이었다.



나는 그 부정적인 기억 한가운데로 나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억의 파도 위에 올라 테이크 오프를 시도했다.



'이걸 나의 기회로 만들어 보리라! '



스스로 생각해도 멋지게 외친 것 같았다. 그 순간만큼의 내 이미지는 영화 '폭풍 속으로'의 주인공 키에누 리브스였다.



하지만, 현실은 역시 녹녹지 않았다.



그저 보통의 파도였음에도 그의 손짓 한 방에 나는 수면 위로 냉동댕이 쳐지는 동네 아저씨에 불과했다.



오늘 새벽 영상을 만들어 인스타에 올렸더니 이곳 자카르타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가 내게 댓글을 달았다.



"오우, 혼자 그 짱구해변에 나가다니 대단한 걸? 어때, 좋은 파도 고르는 법은 좀 배웠나?"



친구와 나는 몇 주전 쿠따 해변에서 함께 서핑 수업에 참여했다.



"초보자한테 좋은 파도가 따로 있겠어? 닥치는 대로 올라타고 깨지면서 차차 배워가는 거지 ㅋ"



나는 오늘도 옆구리에 보드를 낀 채 세상이라는 바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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