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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11. 2024

초밥과 초보



서핑 수업을 받으러 가는 길에 눈에 띈 간판.


https://maps.app.goo.gl/DNqVuEnk2TQtnJtB6


이곳서 가장 평점이 높은 초밥집이었다. 날 생선의 맛이 그리워 지난번에 찾아갔건만, 웨이팅이 길어 포기하고 만 집이었다. 수업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남아 있었기에 초밥 몇 접시만 먹고 나오리라 마음먹고 들어갔다.



메뉴판을 여니 바로 세트 메뉴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생선의 종류와 구성에 비해 가격이 비쌌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연어와 참치만을 먹기로 했다. 4피스만 먹어 볼까 하던 나의 식탐은 내 호주머니 사정을 가볍게 제압하고는 8피스를 시키고 말았다.



"참치 4피스, 연어 4피스 주세요."



"피스? 아! 포션?"



여기서는 피스를 포션이라고도 표현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괜찮겠어요?"



종업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뭐가 괜찮냐는 거지?



"예, 괜찮아요."



그때 한 번쯤 나의 주문을 의심해봐야 했다. 하지만 주문은 이미 들어가 버렸고 10여 분이 흐른 뒤 내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이런! 한 포션은 한 접시란 뜻이었다. 예상보다 큰 지출에 당황스러웠지만, 이곳이 쿠팡 로켓배송도 아닌 이상 환불은 당연 불가능했다.



'레몬이 주어지면 레몬즙을 짜라.'라고 했던가?



나는 한국보다 저렴한 편인 이곳 초밥 가격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래 이 기회에 초밥 한 번 원 없이 먹어보지 뭐."



안 그래도 초밥 귀신이었던 내게 16피스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결국 함께 시킨 맥주와 초밥을 모두 먹어 치우고도 모자랐던 나는 우동과 아이스크림 모찌로 입가심까지 했다.  계산을 하던 종업원이 나를 살짝 놀라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중국 부자인 것처럼 보일래나?'



허나,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그녀가 한국어로 인사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미 내가 한국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기야 내가 계산을 위해 내민 카드가 우리나라 여권모양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서핑 수업을 받다가 휴식을 갖는 중이었다.  동양인 모녀가 두리번거리며 내가 쉬고 있는 파라솔 방향으로 들어왔다. 다른 학생을 가르치다가 무릎 부상을 입은 린을 대신해 나를 가르치던 리키가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뭔가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다행히 그녀들은 한국 사람들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아? 예. 저희가 여기 수강권을 양도받았는데, 이 분이 잘 이해를 못 하셔서요."



나는 좀 떨어진 곳에서 서핑스쿨의 장부를 기록하고 있는 린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린, 저분들이 수강권을 다른 사람한테 받았다는데, 수업이 가능해?"



내 말을 들은 린이 그녀들에게 다가가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노 플라벨름."



모녀가 내게 감사 인사를 했다.



"한국 분이세요? 혹시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예. 말씀하세요."



"내일 다시 이곳에서 서핑을 할 건데, 오전이 나을까요? 오후가 나을까요?"



"파도 말씀하시는 거라면, 오후가 좋은 것 같아요. 오전이 좀 더 강한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여기서 일하고 계시는 건 가요?"



"네? 아뇨. 하하! 저도 여기 수강생이에요."



나는 큰 소리로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죄송해요. 머리도 묶고 있고, 피부도 까맣게 타셔서 여기서 일하시는 분인 줄 알았어요. 또 사장님도 잘 알고 있는 것 같고요."



"아, 이곳에서 좀 오래 배우고 있는 중이긴 해요."



"아, 그러셨구나."



우리들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리키가 다시 바다로 나가자고 나를 끌었기 때문이었다.



"렛츠 고!!!!!"



아침 일곱 시,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수경과 블루투스 이어폰, 블루투스 키보드, 스마트 폰을 챙겨 수영장 옆 간이식당으로 향했다.



"슬라맛 빠기!"



"굿모닝!"



"브랙퍼스트?"



"예스."



일요일 아침이라서인지 기존 직원은 아직 출근하지 않고 지난주에 새로 들어온 신입 여직원이 나를 맞았다. 오늘이 그녀가 혼자 손님들을 맞는 첫날인 모양이었다. 수습기간 동안 어두웠던 그녀의 표정은 약간의 긴장은 보였지만 유난히 활기찼다.



수영을 마치자, 그녀가 음식을 내왔다. 커피를 쏟을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그녀의 행동에서 떨리는 그녀의 마음이 읽혔다. 그녀가 무사히 음식을 테이블에 내려놓자 내 조마조마하던 마음도 함께 바닥에 놓였다.



오늘의 메뉴는 클럽 샌드위치였다. 식빵 사이에 계란 프라이와 오이, 토마토 같은 야채를 끼워 놓은 음식이었다. 처음 한 것치고는  무난한 맛이었다. 나는 빈 접시를 가지러 온 그녀에게 말을 했다.



"오늘 음식 당신이 직접 만든 거예요?"



"예."



"맛있었어요."



"고마워요."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졌다.



그녀의 오늘 미소가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기도했다.



초밥을 먹고 나온 길에 발견한 연못의 금붕어들, 죄책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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