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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10. 2024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곳에 오고 나는 한국에서보다 일찍 자게 되었다. 뭐 규칙적인 루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수면 습관이기에 그러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다음 날을 빨리 맞이하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다음 날이 궁금한 까닭이었다. 처음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다음 날을 궁금해하다니, 그것도 내가 말이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다음 날이 궁금한 적이 있었던가?



다음 날이 기대된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면 소퐁이나 수학여행 같은 이벤트가 있는 날을 기다린 적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별 이벤트도 없는 그저 그런 일상을 기다린 적은 그다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단지 기억나는 건 주말 전야인 불금 정도? 언제나 회사를 가는 다음 날은 내게 부담이었고 숙제였다. 설령 직장에서 일이 없는 경우라도 집에서 해야 할 일이 생겼으며 그것도 없는 경우라면 양가 부모님에게라도 일이 생겼다.



물론, 내일에 대한 기대를 꺾는 대부분의 원인은 직장으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업무의 부담도 부담이었지만 보기 싫은 사람과 함께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내겐 가장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나는 작은 권력을 가졌다고 바로 타인에게 군림하려는 인간들을 극도로 혐오하였는데 이는 직장에서는 흔히 발견되는 유형으로 선후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발견되는 그것이었다. 처음에는 선배 중에서만 가끔 발견되더니 나중에는 내가 도와줬던 후배가 더 신입인 다른 후배에게 그러고 있는 것을 보며 오만정이 다 떨어져 나가기도 하였다.



물론, 나 또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주위 동료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준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함께 일을 해나가기 위한 불가피한 충돌이었지 적어도 누군가에게 군림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 중에는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소한 권력마저 남용하려는 이들이 있구나란 사실을 직장생활을 통해 수 없이 봐왔다.



특히, 후배 중에는 선배의 호의를 이용해 자신의 권리로 만들려는 치들도 있었는데 이런 유형들이 나중에 조그만 완장이라도 차게 되면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 그 알량한 권력을 직장 바깥에서까지 휘두르려는 인간을 본 적도 있다. 특히, 카페나 식당 같은 곳을 같이 가게 되면 그들의 본색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약한 자에 대한 무례함과 강한 자에 대한 교활함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양날의 검이다.



좀 만만하게 보이는 직원 같으면 그들은 여지없이 무리하게 요구를 하고 심지어는 반말을 시전 하기도 한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비대한 자아를 드러내려고 시도한다. 그들에게 사람들의 호의는 자신에 대한 굴종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들의 호시탐탐 사람들을 이용하려는 모습을 볼 때마다 끝이 갈라진 긴 혀를 날름거리는 살모사를 떠올렸다. 입가에는 가식의 미소를 지은 체 언제라도 상대의 목을 물 수 있도록 가늘고 긴 혀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독사의 모습말이다.



일터에서 멀리 떠나온 이곳에서는 이제 그런 이들을 만날 일이 없다. 아니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비교적 적다. 내가 이곳서 만나는 이들은 그저 이곳을 나처럼 여행을 하는 여행객들이거나, 이곳에서 일하는 발리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곳에서도 한국에서처럼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긴 하다. 세금과 대출 약정과 같은 은행 업무를 처리해야 하고 여행 일정과 같은 소소한 일들을 계획해야 한다. 아, 이따금씩 한국에서 아이들이 요청하는 배달음식도 주문을 해줘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내가 직장에서 겪었던 인간관계의 고통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내게 갑질을 하거나 피해를 주는 이들만 싫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번 생명을 얻기 시작한 그 미움과 분노는 그 싫어하는 이들과 헤어졌다고 바로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계속 먹이를 찾아다녔고, 급기야는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들에게까지도 그 촉수를 뼏혔다.



예전에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냥 넘어갔던 일들도 약간이라도 교활하고 부당하다고 여겨지면 자꾸 비판하고 미워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나의 그 판단이 반드시 맞는 것도 아닐진대, 나는 눈에 띄는 모든 것들을 온통 단죄하고 미워하고 심판했다. 결국 이는 정신적인 문제에 이어 신체화 증상에 까지 이르고 말았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을 고른 이유도 바로 그러한 데서 출발한 것이었다. 내가 심판하고 단죄하기 어려운 사람과 환경이 있는 아주 낯선 곳이 내게 필요했다. 거기에 더해 그동안 비난하는 데 써왔던 익숙한 한국어를 쓰지 않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고른 곳이 말로만 듣던 적도의 나라인 인도네시아, 그중에도 바로 이곳 발리였다.



이곳에서의 나는 초보 인도네시아 사람이었다. 이들의 문화와 관습과 언어를 익히려 노력해야 했다. 당장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학생의 입장인 내게 나의 판단 습관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생각건대 이 습관적인 비판은 내가 그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겨질 때 가동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꼭 지적 능력이나 재력이 아니라도 그저 도덕적 우위의 감정에 불과하더라도 나는 비판의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기본적인 음식주문과 꼭 필요한 불편 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영어를 배워야 했고 그들이 인도네시아 음식을 먹는 법을 배워야 했으며 또 그들이 파도를 타는 법을 배워야 했다.



매일매일이 새롭고 다음 날이 궁금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불쾌할 일들도 이곳에서는 그저 배워야 할 일로 여겨졌다. 그제야 나의 불만 가득한 비판 습관을 강화시켜 온 것은 나의 교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거기에는 떨어져 관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 여행지의 휴식과 여유가 큰 역할을 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인간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이성보다는 감정, 의도보다는 환경에 크게 지배되는 동물인 까닭에 부정적인 경험이 켜켜이 쌓여 임계치가 넘어있는 동일한 공간에서는 새로운 창의적인 발상과 전환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내 교만함을 알았으니 이제 끝난 것일까?



아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실천이 남았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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