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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28. 2024

바투 동굴




계단을 오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소 운동을 꾸준히 해온 나로서도 계단의 가파름은 상상이상이었다. 내게도 이럴진대 몸이 불편한 사람들과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에게는 무척이나 힘든 고갯길일 것이었다. 하지만 두교를 믿는 인도의 노인들은 군소리 하나 없이 벅찬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고 있었다. 가끔 중간중간 쉬는 사람은 있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아내려 가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거대한 크기의 동상을 지탱하기 위해 등 뒤로 거대한 지지대를 설치해 놓은 모습이 상적이었다.

어쩌면 이곳의 실질적인 주인일지도 모르는 원숭이 한 마리가 힘겹게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자세히 보니 왠지 발리의 울루와뚜 사원에서 내 헤드폰을 훔쳐가려 했던 녀석과 닭은 구석이  듯싶었다.

발리의 힌두교와 관련한 예술들이 뭔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이곳 말레이시아의 힌두교 예술 작품들은 보다 인도의 원형과 닮아있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인도네시아보다 더 직접적으로 오랜 세월 동안 인도의 영향을 받아서인 까닭이 아닌가 싶었다. 그에 비하면 내가 직접 본 발리의 힌두 문화 중 캐짝 댄스와 같은 것은 중국의 공연예술인 경극의 요소가  가미되어 인도와 중국의 문화가 적당히 섞여있는 느낌이었다.

바투 동굴의 내부에 들어서자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거대한 세계가 펼쳐졌다. 마치 예전 영화나 만화에서 보던 지하궁전 같은 느낌이었다. 저 멀리 아까의 계단만큼은 아니지만 또 다른 계단이 길게 혀를 내밀 듯 앞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웬만한 신심의 힌두교 신자가 아니라면 면에서 적당히 포기하고 싶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드는 광경이었다. 바투동굴의 신은 끊임없이 이곳을 찾아온 신자들의 신심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바투동굴 끝에 위치한 사당으로 꾸역꾸역 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둥의 모습으로 거꾸로 자라고 있는 종유석들이 위협하듯 아 쏟아지고 있었다.

마침내 동굴의 끝에 있는 사원까지 오고야 말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빌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동굴 한가운데에 서서 뻥 뚫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장면은 나로 하여금 어린 시절 읽었던 무협소설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였다. 원수에게 쫓기던 주인공이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무릉도원이었다는 이야기. 주인공은 원숭이들이 주인이었던 그곳에서 기연을 얻어 엄청난 무공비급을 습득하게 되었고 그들의 도움으로 절대 무공을 수련한 끝에 원수에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만약, 그러한 장소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이런 곳이지 않았을까?

장엄하고 신비로운 거대한 종유석 아래로 사원을 지키는 여인이 저녁거리를 준비하는지 야채를 다듬고 있었다. 하늘 밖의 또 다른 세상 같은 이곳에서도 일상은 지속될 수밖에  것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껴졌다.

사람들이 저 가운데 뱀처럼 튀어나온 종유석을 만지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저것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램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이곳에서도 돌아다니고  양이었다.

누군지 중국어로 저 높은 곳에 자신이 왔다갔음을 커다란 글씨로 자랑스럽게 표시해 놓고 갔다. 빨간 페인트로 1958년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니 작성자가 저걸 적은 시절이 스물이 넘었다고 가정하면 그는 이미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어쩌면 오늘 온 이들 중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범행을 보러 온 이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무협소설의 세계 속 주인공들은 저런 글자 정도는 절벽 위로 뛰어올라 한 손가락으로도 잘도 새기더구먼 실제 그 밧줄에 매달려 정성스레 한 글자 한 글자 페인트 칠을 했을 것이다.

이 정도의 넓이라면 마을이 형성되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도의 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 남쪽으로 쿠알라룸푸르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귀여운 원숭이 모자가 계단에 나란히 앉아 사람들이 주고 간 과자부스러기들을 오물짝 조물짝 먹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피해 사람들이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이곳의 주인은 확실히 이들임이 분명했다.

점심때를 놓쳐 지하철 역사 내부에 있는 와플가게에서 와플 하나를 주문했다. 내 뒤로 원숭이 몇 마리가 따라오자 가게 주인 여성이 긴 막대기를 들더니 그들을 쫓아냈다. 그러자 원숭이 중에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개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원숭이가 으르렁 거리는 것은 영화에서만 봤는데 실제로 보니 제법 오싹한 느낌이었다.


"한눈팔면 원숭이들이 음식을 훔쳐가곤 해서요."


몇 차례 막대기를 휘둘렀던 것이 피곤했는지 숨을 헐떡이며 주인 여성이 내게 변명처럼 말을 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를 따라온 원숭이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역사 구조물 지붕 위에서 보초를 서 듯 와플 가게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신경이 충분히 날카로워질 만한 모습이었다. 원시 수렵시대도 아닌데 사람이 원숭이들과 먹이를 두고 경쟁을 하게 되다니.


멀리서 볼 수밖에 없는 여행자의 시각에서는 귀엽기만 한 원숭이였지만 그들과 가까이 살아야 하는 이곳 주민의 입장에서는 이들 원숭이들은 성가시고 귀찮은 존재였던 것이었다.


찰리채플린이 인생을 두고 한 말이 떠올랐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p.s. 원래는 말레이시아 매거진에 들어갈 글인데 잘못 발행되어 발리 브런치북에 묶이게 되었네요. 브런치 북으로 한 번 발행되면 발행 취소도 삭제도 안된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바투 동굴은 인도네시아 발리가 아닌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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