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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24. 2024

그저, 고마운 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스마트폰에 인도네시아어로 된 메시지가 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던 이곳 통신사의 그저 그런 내용의 문자려니 생각하고 넘어가려는데 그냥 넘어갈 문자가 아니었다. 그때부터 스마트폰의 통신이 먹통이 되어버렸던 것이었다.


큰일이었다. 이따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랩 어플을 이용하여 바이크 택시를 호출해야 했는데 데이터가 안 되면 그게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와이파이가 터지는 일반 식당 같으면 와이파이를 이용해 택시를 불러놓고 바로 타면 그만이었는데 여기는 넓디넓은 비치워크 쇼핑몰이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우리와 다르게 대형 쇼핑몰이면서도 무료 와이파이 환경을 제공하지 않고 있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후다닥 마치고 나는 혹시라도 데이터가 터지는 곳이 있을까 싶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다못해 와이파이라도 잡히는 곳이 있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데이터는 터지지 않았고 와이파이 또한 잡히지 않았다. 나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짜증이 난 상황에 서 있는데 한 발리 사람이 내게 영어로 물어왔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한국이요."



"아, 김정은?"



이건 무슨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 짜증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쳐다보자 그가 얼른 자신의 대답을 사과했다.



"아.... 미안해요."



"......."



그래도 사과는 하는 것을 보니 그저 실수려니 생각하고 이야기나 들어보려고 했다.



"혹시 저희 회사에서 새로운 스낵을 만들었는데 하나 구매해 보실래요?"



그가 자신의 배낭에서 주섬주섬 수상쩍은 과자 한 봉지를 꺼내어 내게 보여줬다.



가뜩이나 기분도 언짢은데 다가와서 김정은 타령이나 하고는 과자를 사라니?



화가 머리끝까지 났으나, 그 순간에도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민간 외교관임을 자각했다.



"미안해요. 내가 지금 좀 바빠서요."



나는 그를 피해 얼른 자리를 떴다. 내가 사라지자 그는 바로 한 여학생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저 과자, 정상 제품은 맞을까? 혹시 마약 같은 게 섞여 있는 것 아냐?'



여학생이 조금 걱정되었지만 지금은 내 코가 석자였다.




도저히 와이파이를 찾을 수 없게 되자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조금 위험부담이 있더라도 그랩 택시가 아닌 지나가는 일반 오토바이 택시를 잡아 타 보기로 한 것이었다. 다행히 한 대의 오토바이가 눈에 띄었다. 내가 그에게 손을 흔들자 그가 나를 발견하곤 도로를 가로질러 내 쪽으로 왔다.



헬멧을 벗은 것을 보니 앳된 소년이었다. 나는 먹통이 된 구글지도를 꺼내어 내 숙소가 나와있는 화면을 보여줬다. 그가 내 숙소의 이름을 자신의 폰에 입력을 했다.



"오, 여기 짱구네요. 여기서 꽤 멀어요."



"아, 저도 알아요. 혹시 얼마에 갈 수 있을까요?"



"아, 너무 먼데..."



아이가 어디서 못된 것만 배운 건지 가격을 올리기 위한 꼼수를 쓰고 있었다.



"싸게 해서 만 오천만 주세요."



소년의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만 욕이 나올 뻔했다. 내가 머무는 숙소에서 이곳까지 수 십 번을 다니면서 아무리 비싸게 지불해도 오 천 원을 넘어본 적이 없는 요금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사래를 치며 뒤도 안 돌아본 채 걷기 시작했다. 괜히 말이라도 하면 화라도 낼 것 같아서였다. 뒤로부터 소년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가격을 낮춰 부르는 소리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미 그에게 신뢰를 잃어버린 나는 그의 오토바이를 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도로에 자동차가 가득 차 있던 까닭에 오토바이를 탄 상태인 그는 나를 따라올 수가 없었다.



'아, 오늘 무슨 날인가?'




그나마 화를 내지 않은 보답이었을까? 한 달 전 내가 먹었던 초밥집 가게 앞에서 그전에 등록해 두었던 와이파이를 가까스로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곳에서 바이크 택시를 호출해도 그것을 탈  수 있는 쇼핑몰 정문에 위치한 그랩 포인트는 이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대형 쇼핑몰인 이곳 비치워크는 정해진 그랩 포인트에서만 그랩 택시를 호출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마침 초밥 가게 인근에 있는 그랩 포인트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행여라도 와이파이가 끊길까 싶어 얼른 택시를 호출했다. 택시 요금은 고작 4천 원이었다. 바이크는 고맙게도 5분도 안되어 도착했다. 헬멧을 벗은 모습을 보니 이번에도 앳된 소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눈에 봐도 선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불금 저녁인 까닭에 유난히 교통체증이 심했다. 뒷자리에 타고 있던 내가 힘들 정도였으니 운전을 하는 그는 몇 배로 힘들었을 터였다. 1시간 여의 운전 끝에 그가 나를 숙소에 내려줬다.



"태워줘서 고마웠어요."



나의 감사인사에 소년이 미소로 답례를 해줬다. 오는 동안의 운전이 꽤나 힘들었을 텐데 그런 내색은 전혀 없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에게 마침 지갑에 있던 천 원의 팁을 줬다.



방에 들어와 아까 통신사에서 온 인도네시아어 메시지를 번역했다.



 '유심카드의 데이터를 모두 사용했으니 자사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새로 구입하시오.'라는 내용이었다. 그 메시지가 내게는 마치 이제 발리를 떠나도 된다는 허락처럼 들려왔다.



오늘은 그저,

 고마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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