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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23. 2024

발리의 청담동, 그리고 부동산 제도



오늘은 큰 맘먹고 짱구비치에서 꾸따비치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한 번쯤 해변을 따라 끝까지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발리를 떠나기 4일 전인 오늘에야 그것을 실행하게 되었다.


짱구비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파도가 거셌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파도들 사이사이  물에 빠진 서퍼들이 파도와 힘껏 싸우고 있었다. 백사장을 걷기 위해 샌들을 벗어 가방에 걸었다.


요즘 한국에도 '어씽'이라는 이름으로 맨발 걷기가 유행이다. 부드러운 황톳길이나 아프지 않은 작은 조약돌들이 덮여있는 자갈길을 걷는 것은 유산소 운동으로도 좋지만 자연과 접지하는 것만으로도 신체에 좋은 효과를 준다고 한다.  이곳 발리에 와서 처음으로 백사장을 맨발로 걸어보니 이 또한 장점이 있었다.



일단 목욕탕에서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효과가 있었다. 뜨거운 햇볕으로 한 껏 달궈진 모래 위를 걸을 때는 온탕 혹은 열탕의 느낌이지만, 차가운 파도가 할퀴고 간 모래 위를 걷는 느낌은 냉탕의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뭔가 더 혈액순환이 잘 되는 것 같다.



또한, 오래 걷다가 피로한 느낌이 들면 잠시 바닷물이 발을 담가 족욕을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물론, 바다가 제공하는 공짜 서비스이다.



하지만, 해변 맨발 걷기에는 단점 역시 존재한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아래서 걷는 것은 사막 한가운데를 걷는 것과 비슷하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백사장에는 햇볕을 가려줄 어떠한 가로수도 없었다. 해변 맨발 걷기의  가장 좋은 때는 아무래도 해가 사라져 가는 저녁 무렵이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발리의 노을을 보고 있노라면 모래 속 깊이 박힌 발걸음조차도 절로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짱구의 해변은 꾸따나 르기안, 스미냑의 해변에 비해 정비가 덜 되어 있어 걷는 것이 불편했다. 한 번 발을 옮길 때마다 모래사장에 깊게 박히고 마는 발을 빼내는 일은 은근히 체력 소모가 심한 일이었다. 그래도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도로를 걷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걸어 나갔다.



그 순간, 내 앞에 절망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해변 사이로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거의 한 시간이 넘게 걸어온 상황에서 강을 피해 돌아가야 하는 일은 무척 짜증 나는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고전영화인 '혹성탈출'에서 주인공 찰턴 헤스턴이 마지막 장면에서 무너진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울부짖던 것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불과 6미터 정도의 강을 건너기 위해 나는 1.4킬로미터를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길을 따라 걷는데 깨끗하게 포장된 도로가 오토바이도 다니지도 않고 걷기에 아주 편하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길을 따라 펼쳐진 가옥들의 모습은 평소 보아온 발리의 집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뭔가 우리나라의 고급 주택가에나 있을 법한 집들이 좌우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발리의 청담동은 여길 두고 말한 것일까?'



깔끔한 주택가와 고급스러운 상점들이 동네의 분위기를 한껏 고즈넉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우연하게도 부동산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전면 유리창에 붙어 있는 전단지를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섰다. 우리 식으로 하면 연세와 장기 렌털하는 수영장이 딸린 예쁜 집들을 홍보하는 전단지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가격이 싸지는 않았다. 제주도의 타운하우스 연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보다는 대지가 넓었지만 천 오백만 원을 넘는 가격이 대부분이었다.



"좀 도와드릴까요?"



가게 안에서 사장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나왔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여기서 그냥 가기에는 뭔가 도망치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 그녀에게 구매의사가 있는 듯 설명을 요청했다.



"혹시 추천 매물이 있을까요?"



"아, 개인적으로는 연세보다는 장기렌털을 추천드려요. 가령 이 물건의 연세가 1500만 원이라면 28년 장기 렌털의 비용은 1억이 채 안 되니까요."



"아, 그렇네요. 매년 계약을 하는 것보다 장기 계약이 훨씬 저렴하기는 하네요. 혹시 외국인이 계약하는데 법률적인 문제는 없을까요?"



"네, 전혀 없습니다. 사실 저희 물건들은 거의 외국인 대상의 물건들이거든요."



"혹시 세금이나 중개 수수료는 어떻게 될까요?"



"아, 그것도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세금이나 중개 수수료는 파는 사람, 땅 주인에게만 받게 되거든요."



"아, 그런데 저기 기간제한이 없는 장기 렌털도 있던데 저건 가격이 얼마인가요?"



"아, 저거요. 저 물건은 외국인에게 파는 물건이 아니에요. 인도네시아 법 상 외국인은 사용권만을 구매할 수 있어요."



갑자기 우리나라의 부동산제도가 떠올랐다. 특히, 최근 제주도 부동산의 가격이 급등한 데에는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의 구매가 기여한 바가 컸다. 특별한 근거 없이 외국인을 차별하는 것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우리 후손들의 주거권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외국인에게 사용권은 보장하되 소유권은 제한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정보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다시 올게요."



"예, 저희는 매일 9시부터 5시까지 열고 있으니 언제라도 방문해 주세요. 아, 선생님 이름은 어떻게 되시죠?"



"예, OOO입니다."



나는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구매의사만 밝힌 채 다시 꾸따해변으로 향하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가난한 뚜벅이 여행자였다.



'이곳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행여나 부동산 사장님이 다시 부를까 싶어 얼른 걸음을 재촉하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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