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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22. 2024

마음의 서퍼

감정은 그저 내게 찾아오는 손님이다.



어제는 몸이 아픈 것도 아니었는데 유난히 우울한 하루였다. 곰곰이 따져보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내게는 그 원인이 있을 법한 모든 과거의 기억과 내 신체의 모든 상태를 세세히 분석할 능력은 없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곳보다 더 자주 우울과 무기력이 찾아왔었다. 하지만, 그때는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길 때였기 때문에 내 무기력과 우울의 감정을 그 사건들과 연관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면에서 내게 안심을 주었다. 내게는 괴로운 사건과 사람보다 원인 모를 감정이 더욱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이를 테면, '오늘 회사에서 발표할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으니 이렇게 마음이 떨리는 게 당연한 거지.' 하거나 '어제 내게 욕했던 그 싫은 인간을 또 만나야 하네.' 하면서 무심코 떠오르는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내가 굳이 만들지 않으면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이곳의 생활에서도 여전히 찾아오는 우울과 불안, 무기력들을 보건대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은 반드시 내게 발생하는 어떤 사건 또는 사람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감정은 그저 내게 찾아오는 손님이다.'라는 불가의 말이 있다. 아마 위빠사나 수행처에서 한 비구니 스님께 들었던 말씀으로 기억한다. 그 말이 오늘 떠올랐다.



그때 스님의 말씀은 우리가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감정이 먼저 찾아오고 그 뒤에 그것을 합리화하려는 우리의 생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때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하지만, 별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이곳에서조차 내 마음이 수시로 감정의 파도를 타는 것을 보면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대강 짐작이 된다.



그렇다면 이 말이 가져오는 실제적 효용은 무엇일까?



생각건대, 우리가 우리에게 일어나는 감정의 원인을 외부 사건 혹은 외부 사람에게만 두게 된다면 우리의 마음 상태는 외부의 요인에 의해 끌려다니게 되고 말 것이다.



' 저 놈이 내게 나쁜 짓을 했으니 내가 기분이 나쁜 게 당연한 거야.'



'이 빌어먹을 직장 때문에 내게 마음의 병이 생긴 거야.'



'부모를 잘 못 만나 내 성격이 이렇게 지랄 맞은 거야.'



등등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마음의 상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면서 타인에게 분노하게 되고 그러한 상황을 피하지 못한 자신의 우둔함을 탓하게 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감정은 과연 그 사건과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가 사물과 세상을 인식하는 것과 그것이 가져오는 행동과 결과 사이에 우리의 생각 즉, 해석작용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우리에게는 맑고 깨끗한 생각의 거울인 긍정적인 가치관이 필요하다. 비록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사건이어도 그것을 긍정적으로만 해석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우리에게 유리한 결과로 가져올 수 있다.



예전에 미국의 자기 계발 강연가인 브라이언 트레이시 강연에서 들은 에피소드가 기억이 난다.



"부자가 되려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셔야만 합니다. 심지어 집에 불이 나서 전 재산을 다 날리더라도 '어차피 난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갈 계획이었잖아. 쓰던 물건도 모두 버릴 거였구.'며 긍정적인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때 그 이야길 들으면서는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었다.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뭐 지금도 그 예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우나, 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만큼은 확실하게 이해한다.



바로 생각의 전환을 통해 감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이에게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사실 우리의 해석작용인 생각은 거의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인 까닭에 위의 예처럼 생각과 감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상에 쫒겨 사는 우리에게 그러한 훈련의 시간을 갖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기에 훈련이 힘든 우리에게는 보다 쉽게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감정은 그저 내게 찾아오는 손님이다.'라는 명제이다. 감정이란 것이 외부의 사건과 사람 또는 내가 일으키는 것이 아닌 그저 스스로 찾아왔다가 스스로 사라지는 손님과 같은 것임을 인식했을 때 우리는 보다 감정에 덜 얽매일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우리의 감정을 들여다보면 매 순간마다 변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방금까지는 그렇게 슬펐는데 시간이 지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깔깔 웃고 있다. 감정은 그렇게 고정적이지 않은 채 흐르는 물처럼 매 순간 우리를 관통해 지나간다. 우리에게 생기는 대다수의 정신적인 문제는 그렇게 흘러가려는 과거의 부정적인 감정과 사건을 억지로 붙들고 해결해 보려는 데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햇살 좋은 이곳의 아침, 감정이란 그저 매 순간 찾아오는 것임을 명심하고 감정의 파도가 들이닥치면 그곳에 올라 서핑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서퍼가 되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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