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친구 중 한 명이
20대에 가장 먼저 결혼했다.
그리고 우리 중 가장 먼저 아이를 낳았다.
결혼 전 그녀는 상대를 배려하고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 넓은 아이였다.
그랬던 그녀가 만날 때마다
시댁이야기로 열을 올렸다.
그녀의 상황이 충분이 이해는 되었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이 이전과 조금 달라 보였다.
몇 년 후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친구집에 놀러를 갔다.
시댁이야기로 하소연을 하던 내게 친구는 말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서운하고 속상하던지.
몇 년 시간이 지나고 생각하니 별일 아닌데 내가 예민했더라고."
아이 넷을 낳고 키우면서 친구의 말을 크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별일 아닌데 내가 예민했나?"라고 생각하고
그러려니 무심코 지나간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대수롭지않게 생각하며 흘려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곪는지도 모른채.
막내를 낳고, 코로나가 터지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극도로 예민해졌던 나.
감정 코칭 수업이 끝난 후 강사는 내게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심리상담 한 번 받아 보시는 거 어때요?"
그제야 마음이 아프고 지쳐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즈음 읽고 있던 책 속 한 줄이 마음에 닿기 시작했다.
이지성 작가의 <꿈꾸는 다락방>에서 만난
"R=VD, 생생하게 꿈꾸면 현실이 된다."
이 한 줄이 책을 읽는 나로 움직이게 했다.
M.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만난 한 줄은
"자기 훈육이란 자기 확장의 과정이다"라는 문장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 결국 나를 치유하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 <데미안>에서
에바 부인은 오랫동안 방황하며 길을 찾아온 싱클레어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그 길이 그토록 힘들었나요? 그저 힘들기만 했을까요? 그 길은 또한 아름답지 않았는지요?"
이 한 줄을 통해 나는 힘든 여행일수록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금방 잊히는 삶이 아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삶.
그러기 위해 지금 당장 편안한 삶이 아닌, 힘들고 고되지만 의미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게
나중에 더 아름답지 않을까?
책 속에서 만난 한 줄이
책을 읽게 하고,
그 속에서 만난 한 줄이 용기와 희망을 주고,
나아가 성장할 수 있는 길로 안내해 주었다.
또한 나다운 삶을 사는 게
행복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나다운 삶은 결국 내가 선택한 삶이며
그 속에서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 하는 삶이 아닐까.
짧은 문장이지만, 그 한 줄이 나를 위로한다.
복잡한 생각들을 잠시 멈추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감사한 일, 위로가 되는 문장, 오늘의 다짐 등.
하루 한 줄, 나를 위한 글을 적어보자.
그 한 줄이 쌓여
어느새 마음은 회복되기 시작된다.
회복은 거창하지 않다.
하루 한 줄이면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한 줄을 쓴다.
그 한 줄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한 줄이,
누군가에게도 회복과 희망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