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기본> - 소원
p.216) 좌우지간 먼저 미소 지으면 상대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게 할 수 있다. 그런 마음가짐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네 아이를 키우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낯선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말하면서 정작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는 짜증 섞인 말투로 대하고 있었다는 걸. 남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순간 짜증은 내 일상의 기본값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아이 하나만 품에 안고 있었던 그 시절이 오히려 가장 평화롭게 느껴졌다. 물론 이유도 모른 채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야 했던 날들이 힘들기도 했지만, 잠든 아기의 숨결을 느끼는 그 순간 만큼은 아이와 교감하며 마음의 여유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난 뒤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갓난아기를 안고 달래는 중에도 첫째는 끊임없이 옆에서 놀아달라고 조르곤 했다. 겨우 잠든 아이 옆에 다가가 예쁘다고 손을 뻗는 첫째, 그리고 깨어나 다시 우는 아이. 나는 번갈아 가며 우는 반복되는 일상에 점점 지쳐갔다.
당시 나는 아이의 정서를 위해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보다 엄마가 키우는 게 더 좋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학대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내 믿음은 더욱 확고해졌고,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다. 그만큼 아이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고 나는 잘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두 아이와 함께했던 삼 개월은 나의 생각들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큰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아이가 잠든 시간은 내게 유일한 휴식이었다. 하루 종일 쏟아지는 요구와 울음 속에서 짜증과 화를 참지 못해 쏟아내고, 곤히 잠든 아이 얼굴을 바라보며 후회하곤 했다. “방긋방긋 웃는 아기의 얼굴을 통해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렇게 짜증이 일상이 된 삶 속에서 ‘화목한 가정’을 바란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에게 있었다. 그 깨달음 이후 나는 변화를 결심했고, 그 길은 쉽지 않았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1~2년이 지나도 여전히 짜증 섞인 말투가 먼저 튀어나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자책했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코칭을 배우며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다정하게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놀랍게도 나의 다정한 말투는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가 바뀌자, 그들의 반응도 바뀌었다.
말 한마디의 힘.
가족에게 다정하게 말하기 시작했을 뿐인데, 우리 집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느리지만 따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