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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골탈태

풀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by opera


간밤에 바람이 거칠게 불고 천둥소리도 요란하게 비가 많이 왔다. "쿠르릉"소리에 놀라 강아지들은 품 안으로 달려들었고, 처마 밑으로 비가 너무 흘러, 땅이 파일까 커다란 대야와 양동이를 받쳐 놓았다. 오늘까지 비가 예보되어, 종일 비가 내리리라 생각했는데 이른 아침에 창으로 햇살이 든다. 나와보니 어느새 비가 왔냐는 듯, 하늘이 살짝 맑아져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선 있을 수 없는 변덕쟁이의 행보지만, 자연의 변덕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뺏기도 한다. 쥐고 있을 수만 없게 만들기에 인위가 아닌 자연이다.


한편으론 오늘도 비예보가 있어 아직 장마도 아닌데 제발 좀 그만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비가 와도 너무 많이 온다. 그러다 마당을 걸으면서 비를 맞아 더 푸르고 예쁘게? 훌쩍 큰 풀들이 눈에 띄었다. 이미 여름엔 "매일이 풀과의 전쟁이다"라고 했지만 뽑기에도 지쳐서 대충 내버려 두었는데 비 맞고 더 싱싱하게 잘 자란 것이다. 생기 넘치는 초록색이 예쁘기도 하지만 한 줌 쥐어 뽑았다. 그런데 다른 때는 말라 잘 뽑히지 않고, 주로 뜯기던 녀석들이 뿌리째 쑥 올라온다.


잘됐다. 오늘 아침엔 풀을 뽑자. 간밤에 비가 많이 와서 땅이 푹 젖어있으니, 흙이 묽어져 풀도 잘 뽑히는 것이다. 장비를 챙겨서 야채 반, 풀 반인 채마밭으로 향했다. 나의 장비는 세계가 인정한 우리의 다정한 농사 기구, 호미와 모종 갈고리다.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음악을 틀어놓고 비닐장갑을 낀 후 면장갑을 끼고 풀을 뽑는다. 오늘 나는 "풀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채소와 풀이 더불어 자라 숲처럼 된 채마밭은 오뉴월 우리 집 밥상에 신선한 채소를 많이 제공했다. 상추는 몇 번이고 잘라먹어 작은 나무처럼 굵은 대공을 가지게 자랐고, 오이도 벌써 여러 개를 따먹었다. 생전 처음 심은 딸기 세 그루는 햇볕에 빨갛게 익은 딸기 몇 개를 맛보게 해 주었다. 몇 해 전에 씨를 뿌렸던 더덕은 해마다 덩굴을 이루며 풍성하게 올라간다. 다**에서 천 원에 여섯 개 파는 초록색 지지대를 사서 나무를 타고 올라가도록 세워주기도 했다. 물론 튼실한 더덕을 캐어 본 적은 없다. 올해는 캐볼 수 있으려나. 더덕은 하늘로 향해 올라가는 모습과 진하게 나는 냄새만으로도 제 몫을 해준다.


고추는 작지만 몇 개씩 열리고 있다. 이웃 지인이 진딧물이 끼여 약을 줘야겠다고 했는데, 약을 주지 않고 진딧물이 있는 잎은 따내 정리를 했다. 늦게 심은 호박은 이제 꽃을 피우고 있다. 방울토마토, 찰토마토, 흑토마토, 짭짤이까지 몇 가지 종류의 토마토는 지지대에 힘입어 주렁주렁 달려있다. 처음에 뿌리내릴 때는 지질해서 살까? 싶었던 가지도 싱싱하게 뿌리를 내리고 조그맣게 달리기 시작했다.


채소들은 저마다 제 몫을 한다. 질기게 자라나는 풀들 속에서도 맺혀야 할 열매를 맺히면서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주고 있다. 더워지면서, 한 몫하는 벌레들이 쌈배추 잎을 많이 갉아먹었다. 채마밭을 가꾼지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상추는 우리 민족의 근성을 닮은 채소 같다. 물론 식탁에서 빠지지도 않는 가장 한국적인 채소이기도 하지만. 물만 제대로 주면 땅의 기운을 잘 받아 대공을 굵게 이뤄가며 푸른 잎사귀를 계속 만들어 낸다. 다른 채소에 비해 벌레도 잘 꼬이지 않는 듯하다. 잘라먹고 나면 다시 자라고 있다. 무엇보다 고마운 채소다.


땅이 적당히 축축해 풀은 뽑는 대로 뽑힌다. 그중에서도 가지를 사방으로 뻗치고 나가는 풀들은 호미로 파낸다. 골을 새로 만들고, 창고에 넣어두었던 긴 나무판을 가져와 채마밭 틀을 만들어 본다. 요새는 방영하지 않지만, 넷플릭스에서 영국 정원 프로그램을 빠지지 않고 본 기억이 마당 가꾸기에 도움이 많이 된다. 영국 사람들은 정원 가꾸는 것을 생활의 일부로 여길 만큼 정원 사랑이 세계적이다. 자연을 많이 훼손하지 않고, 자연친화적인 정원을 가꾸기 때문에 더 마음에 든다. 채마밭에 나무틀을 해주니 나름 괜찮다.


오며 가며 조금씩 뽑기도 했지만, 표가 나지 않던 채마밭이 작정하고 작업을 하니, 많이 깨끗해진 것 같다. 거기에 틀까지 만들어보니 더 정리가 잘된 것 같다. 하지만 며칠 못가 다시 풀로 덮일 것이다. "풀 이기는 장수는 없다"라고 이웃들은 말한다. 살아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한 번씩 정리할 수 있으니, "완전정복"은 힘들지 몰라도 "아주 치이지는 말자"는 결심을 한다.


채마밭의 풀처럼 끓임 없이 자라, 한 몸처럼 돼버린 일상의 풀들도 많다. 뽑아내면 또다시 생겨나는 이러저러한 풀들... 애를 쓰고 노력을 들여도 금세 표 나지는 않는 삶의 일 들이다. "멈출 수 없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인지라 마음 밭도 한 번씩 갈아엎어, 숨 틀 수 있는 여유의 공간을 만들어 줘야 겠다는 생각을 더불어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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