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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만 가지가 있는 게 아니다.

흔들어 대는 바람에도 뿌리내리기...

by opera




바람이 불어온다. 어제저녁에는 꽃이 활짝 핀 마당에서 이웃들과 담소를 나누었건만, 오늘은 바람이 살살 불어 더 심해질까 걱정을 한다. 바람이 심해지면 활짝 핀 장미꽃들은 일주일도 안되어 떨어져 버릴 것이다. 아무리 화려하게 짧게 피었다가, 가는 꽃이라고 하지만 너무 아쉽다. 세상 사는 것도 바람에 휘둘리며 산다. 큰 바람도 많지만 정작 힘들게 하는 것은 자잘한 바람들이다. 바람은 가지를 흔든다.


나무만 가지가 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 가지도 부러질 때가 많다. 살면서 인생의 자그마한 가지 하나라도 부러지면, 의기가 꺾이게 되어 좀처럼 다시 앞으로 나가기가 힘들어진다. 물론 "사람 가지"가 팔다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고 "행보"다. 꽃들도 화려하게 피는 꽃이 있고, 소소하게 피는 곳이 있고 제 모습을 제가 보지는 못하지만, 각양각색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혼자 각양각색의 가지를 가지고 세상을 헤쳐 나가니,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 존재인가.


흐트러진 마가렛을 다 뽑아내니 정원은 쓸쓸하다. 여름 장미도, 화려하게 밝혀주던 꽃도 떨어지니 마당엔 벌써 가을이 온 듯 스산해 보인다. "위로의 가지" 하나가 뚝 부러진 것 같다. 가지들은 하나만 곧게 뻗은 것이 없다. 여러 가지들이 서로 엉겨있어 하나가 상처를 받으면 다른 가지들도 상처를 받게 되어 있다. 내 마음의 가지만 뼏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가지도 뻗어 있고 "관계"라는 흐름 속에 서로 엉기어져 있다. 그러니 내 마음이 아프면 옆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아픈 것이다. 말 한마디도 조심하지 않을 수 없고, 때로 상처를 주지 않을까 눈치도 보게 되며 마음이 원하는 앞선 일만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사는데 어떻게 기쁜 일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신께서는 고해를 헤쳐나가는 인간을 위해 여러 동반자를 주셨나 보다. 가장 가까운 인간을 주셨고 만물을 주셨다. 요즘 같으면 과연 그에 걸맞게 다스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람 때문에 자연이 파괴되고 사람 때문에 동식물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본다. 그럼에도 만물들은 그들의 몫을 다한다. 하지만 "동반"하라고 주어진 사람은, 때때로 함께 가는 "동반"보다 "고통"을 주는 존재로 바뀌기도 한다. 그래도 엉겨진 가지라 선뜩 잘라낼 수가 없다. 어디서 어디로 이어진 가지고, 뿌리 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인의 소식을 듣는다. 예측치도 못한 발령이 갑자기 났다고 한다. 매인 몸으로 인사를 어찌 맘대로 할 수 야 있겠냐마는 누구의 잣대로도 평가하기 힘든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을 감수하긴 힘들다. 샐러리맨의 서글픔은 인사 때면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눈에 차고 마음이 흡족해야 의지가 살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삶에서 예측하지 못하고 당하는 아픔도 마음대로 쳐낼 수 없는 지금이 안타까울 뿐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보이는 가지는 아파도 견딜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땅속에서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혹은 더 센 뿌리에 휘둘려 얽히고설켜있는 많은 잔뿌리들이 겪는 고통은 얼마나 많은지 조차 모르는게 삶이다. 한그루의 나무가 옳게 서기 위해 견뎌야 할 바람은 어쩌면 버티고 서있는 땅이면에 뿌리를 제대로 내리게 해주는 고통인지도 모른다.


벌리고 있는 가지를 온갖 모양새로 흔들고 있는 바람도, 결국은 나무를 굳세게 서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일지도 모르니 "지금 불어 온 바람이 마음의 가지를 흔들어 놓아도, 뿌리를 굳게 내리고 용기를 잃지 말라"는 어쩌면 뻔한 위로밖에 해 줄 수 없는 미약한 인간임이 아쉬운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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