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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Sep 07. 2021

ktx에서는 빨리 내려야 합니다

왔다 갔다 열차 탄 어느 날


친구 k의 아버님께서 서울 병원에 가신다고 역까지 모셔서 기차를 태워 드리기로 했다. k는 서울 동생 집에 있어 인터넷으로 표를 예매해 보냈고 역으로 아버님을 모시러 나올 테니, 나한테 올라가는 기차를 태워 달라는 것이었다. 흔쾌히 그러겠노라 하고 아침 일찍 모시러 갔다. 9시 반 기차에, 역까지 20분도 안 걸리는데 혹시라도 하는 소심한 성격 때문에 30분 전에 친구네 들러 모시고 역으로 왔다.


매표소에서 인터넷으로 끓은 표를 찾은 뒤, 천천히 역사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열차 대기실까지 모시고 갔다. 대기실은 에어컨이 나와 시원하고 쾌적하다. 사람들도 많지 않아 한산했고, 시간도 넉넉해 역사로 올라가 자판기에서 드링크를 사서  아버님께 드시라고 드렸다. 10여분을 기다렸을까 기차가 온다는 안내문구가 나와 밖으로 모시고 나왔다.


기차가 도착하고 아버님께서 자리를 찾지 못할 것 같아 모시고 천천히 올라가 지정석에 앉혀 드린 후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시는 아버님께 큰소리로

" 아버님! 이제 종점까지 쭈욱 가시면 돼요~ 그냥 앉아 계시면 돼요"

말씀드리고 빨리 내리려 나가는데, 문 닫히는 소리가 나는듯했다. 얼른 나오니 아뿔싸 문이 슬며시 닫힌다. 나는 놀래서 문을 쾅쾅 두드리며 옆으로 제켜도 보는데 꼼짝도 않는다. 이미 기차는 덜컹 거리며 출발한듯하다. 밖에는 역무원도 보이지 않는다.

 

"내려야 하는데요. 내려야 돼요!!!"


들리지도 않는 탕탕거리는 소리에 애타는 메아리까지, 아랑곳도 않는 기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1분도 정차 않을 수가 있지?  자리 찾아드리고 금방 나왔는데..."

ktx를 처음 타봤긴 했지만, 이렇게 금방 떠나 버릴 수가 있나... 나는 다시 친구 아버지께 왔더니 놀라신다. 기차 문이 금방 닫혀버려 내리지 못해, 다음 정거장에서 내린다고 말씀드리고 조심해 올라가시라고 했다. 꼬깃꼬깃 주머니에서 만원을 꺼내 주신다. 

"이걸로 차비해~"  

"아녜요~ 그냥 두세요 저 돈 있어요"

거듭 만류하며 문쪽으로 나왔다. 스스로에 대해 화도 나고 뭐 그리 오지랖 넓게 열차 안까지 올라갔나,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말지... 여러 생각이 들어 짜증도 났다. 사실 부탁하고픈 마음도 살짝 있었지만 다들 바쁜 듯했고 무엇보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상대방 표정 읽기가 힘들었었다. 그리고 설마 이렇게 금방 출발할 줄은 몰랐다. 코로나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교란시킨 것은 물론 우리 마음의 표정까지 앗아가 버린 "공공의 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야속한 마음은 아랑곳도 없이 열차는 소리도 내지 않고 잘 달린다. 돌아보니 내리는 문 앞의 공간인데도 널찍하고 깨끗하게 구획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ktx가 들어왔어도 한 번도 열차 내부를 본 적은 없었다. 차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그러고 보니, 기차 타본지도 꽤 오래되었네..." 옛 생각의 조각들도 함께 지나간다.

"그래, 이미 출발했으니 어쩌랴 다행히 다음 역이 멀지 않으니, 내려서 돌아오는 기차를 타고 오면 되겠다"

마음을 돌리고 나니 차창밖의 풍경이 눈에, 마음에 들어온다.


차창에 기댄다. 시간 내서도 기차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원치 않은 상황이긴 했어도 열차를, 그것도 ktx를 타게 됐으니... 바깥 풍경을 보며 오래전 기차 여행하던 추억을 떠올려본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매점도 하지 않지만, 기차는 얼마나 낭만적이었던가. 실수한 사실에 대해 인정하고 마음 돌린 후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미안해한다. "미안하긴 뭘 이것도 타보니 재밌는 경험이네". 잠시 후 친구에게 전화 온다. 기차 시간을 보니 다음 역에서 30분만 기다리면 내려오는 차가 있다고 그리고 역에 내리면 역무원에게 사실대로 얘기해야 무임승차로 안된다고, 무임승차하면 3배까지 벌금 물 수도 있단다. 역시 친구는 친구다.


역에 내리니 검표원이 계신다. 사실대로 얘기를 했다. "어떻게 1분도 안되어 출발하느냐"라고 했더니 ktx는 원래 그렇게 빨리 출발한다고 하신다. 하기사 그래서 돈 더내고 ktx를 타는 거긴 하겠지만... 내리고 타는 사람 없으면 바로 문이 닫힌단다. 만약 기차 안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역무원을 찾아 얘기한 후에 올라가야 한다고.

나는 "역무원이 없었다 보질 못했다"라고 했다. 아마 앞에 계셨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분은 역무원인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했다. 자신의 어머니를 자리에 모셔다 드리고 내리려고 했는데, 기차 문이 닫히길래 뛰어나와 밖에 있던 역무원을 향해 손을 흔들고 문을 두드렸는데 밖에 있던 역무원도 따라 손을 흔들더란다. 결국 자신도 한정거장 더 가서 돌아오는 기차를 타고 왔다고 한다. 그때 역무원에게 자기 보지 못했냐며 물으니까 그는 잘 있으라고 인사하는 줄 알았다고 했단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군요"

"생각보다 많아요. ktx는 즉시 출발하니 항상 신경 써야 해요 "

하면서 웃는다. 그래도 표는 다시 끓어야 한다고 해서 매표소로 가니

"8400원? 아니 한정거장인데 왜 그리 비싸요?" 

표를 파는 분이 ktx는 기본요금이 8400원이란다.

"와  비싸다 "

역무원은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대기실로 안내까지 해주며 조심해 잘 가라고 인사한다. 칠칠치 못해 벌어진 일이었지만, 마음 따뜻한 정감을 느끼며 금방 만난 친구처럼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많구나..."

대기실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내려가는 ktx를 타기 위해 10분 전에 기차 타는 곳을 찾아 나왔다.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오랜만에 여유를 느끼며 스쳐가는 창밖의 풍경을 마음에 담는다.

8,400원이 아닌 84,000원으로도 살 수 없는 훈훈한 경험을 얻은 "왔다 갔다" 열차를 탄 즐거운 반나절이었다. 아직도 주위에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행복감을 얻은 하루였다.



p.s

KTX ( Korea Train eXpress 한국 고속철도(韓國高速鐵道))는 한국철도공사가 운영하는 고속철도 및 준고속철도 브랜드이자 최고 등급의 열차로, 2004년 4월 1일에 개통되었다. KTX, KTX산천, KTX이음이 있다. KTX이음은 최고 속도가 260km/hr이며 381 좌석이고 열차에 동력장치를 골고루 분산시켜 가감 능력과 수송능력을 높였다. (출처:나무 위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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