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비가 개고 화창한 햇살이 드리우는 아침이다. 가을이 문턱에 까지 왔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하늘은 높고 푸르다. 더위 핑계, 비 핑계, 시간 되는 대로 글 쓰느라 매일 지나다니는 마당밭을 그저 그렇게 보고 다녔다. 자세히 보니 마당 잔디밭에는 온갖 풀이 카멜레온처럼 초록 군락 안에 다양한 모양으로 자라고 있었다. 눈도 좋지 않은 내가 멀찌기서 볼 때는 푸르른 잔디밭으로만 보였던 것이다.
마침 어제 비가 많이 왔기에 아직도 땅이 촉촉해 풀도 잘 뽑힐 것 같았다. 작정하고 연장을 들고 마당에 나간다. 작은 마당밭도 신기하게 일하려 하면 작은 땅이 아니다. 앞마당 쪽 작은 정원에는 한쪽으로 메리골드가 지천이다. 우리 마당은 주인을 잘못 만나 돈 주고 사서 심은 꽃보다는 야생화들이 잘 사는 편이다. 봄이면 마가렛꽃이 지천이고 마가렛이 진 늦여름부터는 메리골드가 온 마당을 덮는다. 메리골드 향을 좋아하기도 하고, 잘 피고 일단 피면 질 때까지 튼튼하게 잘 자라기도 해 그냥 두는 편이다. 한두 해 보내다 보니, 자라도 너무 잘 자라고 뽑아내도 상관없이 다음해면 또 나온다. 올해도 어김없이 배롱나무의 붉은 꽃과 더불어 노란 메리골드는 마당을 환하게 해주고 있다. 너무 많아 다들 뽑으라고 난리다. 그래 이제는 정리를 해줘야겠다.
마당밭은 나의 애정이지만, 요즘 내 마음을 두드리는 또 다른 밭이 있다. 글밭과 마음밭이다. 글밭은 올해 얻은 브런치라는 밭이다. 마음밭이야 항상 갈고 살았지만, 글밭과 마당 밭을 가꾸다 보니, 이전에는 몰랐던 마음밭의 새로운 면을 자주 보게 되어 개간 중이다.
올여름, 글밭에 신경 쓰느라 마당밭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 같다. 새로 얻은 글밭이라 그동안 여기저기 쌓아두었던 글 보따리 풀어놓느라 마당밭에 너무 무심한 건 아니었는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마당밭은 조금만 시선을 주고 애착을 보여주면 금방 표가 난다. 몇 주 동안 글 쓰느라 풀 뽑은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종류의 풀들은 제 세상을 만난 것처럼 군데군데 잘 박혀 잔디와 함께 살아간다. 여기에 익숙해지니 "뭐 이것도 나쁘지는 않네"라고 위안하면서 마당밭은 내버려 둬도 저절도 잘 산다며 글밭에만 애정을 쏟았다. 찾는 이도 많지 않은 글밭에 거름 주고 물 주면서 꽃필 날만 기다리는 심정으로 마음을 들였다.
오늘 아침 모처럼 땀 흘리며 앞 마당밭을 정리하고 나니 확 달라진 마당밭은 이제야 숨이 트인다는 것 같다. 마당밭은 짧은 손길에도 이렇게 반가워하는걸... 금세 표정이 달라졌다. 풀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작은 잎들도 드러나고, 여름을 환하게 했던 장미는 금세라도 다시 꽃을 피울 것만 같다. 글밭 찾느라 마당밭에 너무 소홀했던 미안함이 올라온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아주 많이..."
글밭도 나를 거부하지 않는다. 글밭을 찾는 이가 적어도 글밭에도 하나둘씩 글이 자리 잡아간다. 물론 다른 사람의 글밭에 비교하면 답답하고 부끄럽고 감출 수도 없는, 때로 작은 글들이 많지만. 신기하게도 마당발을 가꾸면서 글밭도 위로를 받는다. 마당에는 온갖 식물이 제모습을 감추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면서 자라난다. 더 잘 보이려 애쓰지도 않고 땅 밑의 엉겨있는 뿌리들도 내 것, 네 것 찾으려 애쓰지 않으며 내리는 빗물로 골고루 먹고 자란다. 풀들은 뽑혀 나가지만 원망도, 남아있는 것들과 비교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잘 살다 가요" 하며 고마워하는 듯하다. 뽑힌 풀들은 산속 어디선가 퇴비가 되어 거름으로 이어질 것이고 내일이면 마당밭에는 새로운 풀이 또 날 것이기에.
또 하나의 밭은 나의 마음밭이다. 일상에 피곤하고 특히 코로나 시국에 힘든 마음밭은 요즘 여행기를 쓰느라 옛 추억을 보면서, 코로나 이후의 꿈도 꾸면서 드문드문 충만해지는 기쁨을 얻는다.
"그래~이럴 때도 있었네, 지금은 고립된 듯 하지만 역시 세계는 하나고 할 일은 많아~~~"
뭐든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 게으름을 용납하지 못하는 부지런한 이기심의 마음밭에는 온갖 것들이 들어앉아 나만의 섬을 쌓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당밭을 가꾸면서 마음밭은 저절로 많은 정리가 된다. 잡초들을 뽑으면서 마음속 잡초도 함께 뽑는다. "내려놓는다 내려놓자" 하면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로 울창했던 마음밭에 고랑을 내고, 길을 틔운다. 누구라도 지나갈 수 있는 바람이 통하는 "마음의 길"을 만든다.
그러고 보니 나는 땅부자다. 요즘 땅값, 집값 때문에 난리인데, "마당밭"에 "글밭"에 "마음밭"까지 밭이 세 개나 되니 요샛말로 찐 땅부자가 맞다.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사랑 주며 가꾸면 원하는 부식과 아름다운 자연을 제공해주는 마당밭과 이런저런 생각 바꿔치기로 분주하고 수련 중인 마음밭에, 새로 생긴 브런치라는 글밭까지 있으니 땅부자, 마음부자가 맞다.
더욱 고마운 점은 이 밭들은 작금의 부동산 난리에도 전혀 요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고 내 보살핌을 즐거워하며 땅값과는 상관없이 나와 함께한다. 일상의 혼란스러움도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도록 마음밭을 잘 갈며, 마당밭이 소홀해지지 않도록 시간을 나누고, 글밭이 초심을 잃지 않고 솔직한 제 길을 가도록 스스로를 추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