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식구들이 다 모일 수 있을 때 배추를 심기로 했다. 풀로 가득 찼던 채마밭을 정리하고 나니 뭔가 심을 기분도 생겼기 때문이다. 옆집 앞집 모두, 채소가 풍성하게 자라는 기름진 밭이지만, 우리 밭은 기름지진 않다. 그저 먹기 좋을 정도 크기로 채소가 자라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래도 올여름 모자라지 않게 오이, 상추도 세 종류나 , 갓, 치커리, 가지, 고추에 토마토는 방울토마토, 흑토마토, 찰토마토, 짭짤이 토마토 등 몇 종류를 심어 식탁을 풍성하게 해 주었던 밭이다. 다만 여름 장마에, 더위에 풀을 제대로 뽑지 않고 뒀더니 그야말로 풀발이 돼 버린 바람에 텃밭이 한동안 잊히고 말았다. 아니, 더위에 풀 감당하기 어려워 외면했다는 게 맞겠다. 게으른 주인 탓에 풀숲에 쌓여서 남아있던 아이들마저 풀밭이 되고 말았다.
시작은 좋았다. 3월 말, 이른 봄에 퇴비를 두세 포대 뿌리고 유박도 뿌린 후에 밭을 갈고 2주 더 지나 모종을 사서 심었다. 어린 모종이 뿌리를 내리고 자리 잡는 것을 보면서 봄의 생명도 더불어 느끼며 여름으로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풀도 나지 않았다. 한 해 농사를 제대로(?) 지어 보니, 풀이 6월~7월에 나기 시작해서 7~8월이면 무성 해지는 것 같다. 풀이 무성해지기 전에 채마밭은 다양한 야채를 부지런히 공급해 주었다. 상추며 깻잎이며 갓이며 토마토에 따먹을 줄만 알았지, 제때제때 풀도 뽑지 않고 관리는 게을리했다. 그러다 장마 지나니 어느새 풀이 남은 채소보다 더 많아졌다. 앞집 채마밭은 아주 깔끔하다. 어쩌면 한동네라도 이렇게 다를까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그분은 아침에 눈뜨면 풀부터 뽑으신다. 보이는 족족 뽑아주니 제아무리 풀이라도 채소밭엔 못 자라는 것이다.
그렇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땅에서 배우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마는 직접 경험해서 배우게 되니,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아침에 눈뜨자마자 풀 뽑는 일은 아직도 내겐 요원한 일인 듯하다. 그래서 결국은 날 잡아 풀 뽑고 한 번씩 뒤집어주는 게 낫다. 마당일은 여럿이 조금이라도 나눠하면 좋다. 서로를 위해서라도 흙을 만지며 모종을 심으며 느끼는 손길을 통해 아이들도 배우는 게 많다(내 생각에 불과할진 몰라도...). 무엇보다 자기가 심은 것이 자라나는 기쁨을 체험할 수 있다. 자연의 정직함을 배우게 된다. 물론 물 주고 가꿔야 하는 것은 내 담당이지만, 심은 것에 대한 보람은 느껴볼 수 있으니 좋지 않을까 싶은 바람으로.
윗집 지인은 자기네 심은 배추가 벌써 아름 포기로 자라나 있다고 한다. 윗집은 원래 모든 채소가 크게 자라는 집이다. 하물며 꽃도 그렇다. 봄에 사다 심은 백합 모종이 거의 사람 키만큼 자라질 않나, 작년 가을 함께 심은 알리움의 꽃대가 너무 올라가 퍼져 피어 이상한 모양이 된 것도 봤다. 마당에 거름을 워낙 많이 주시니 땅이 겁나 기름지다. 우리 채마밭은 아침에 일어나 세수도 않아 푸석거리는 여인네 모습이다. 그래도 식구들 밥상 준비가 먼저인 아낙네다. 여러 해 동안 관심으로 보살핀 밭같기야 하겠나 만, 퇴비와 거름도 주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보살 필테니 아주 기름지진 않을지 몰라도 푸석거리진 않을 것이다.
배추 모종 50개를 구해서 심었다. 잘 자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남들보다 심는 것도 늦었고, 좋은 모종은 먼저 선택받아 가버린 듯한, 조금 부족해 보이는 모종이다. 아니다. 애들이 들으면 기분 나쁘겠다. 작아도 튼실하다. 구멍을 파고 손으로 심고 살짝 눌러준다. 심고 난 후에 물을 살짝 뿌려준다. 오늘 아침에 보니 제법 꼿꼿해졌다. 아직 뿌리는 못 내린 것 같아 보이지만 이번 주말이면 자리 잡을 것 같다. 배추밭에 풀은 꼭 뽑아주리라 결심도 한다. 배추는 벌레가 많이 꼬인다고 하는데, 나무젓가락으로 열심히 잡아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잘 자라라" 아직 자리도 잡지 못한 애기배추에게 부담을 주는 듯하다.
"아니다, 부담 가지지 말고 너 자라고 싶은 만큼 자라~~ 뿌리내리고 팔 뻗치면서... 아프지만 말고..."
다른 집처럼 쪼개서 김장할 정도로 크게 자랄 거란 기대는 않는다. 배추쌈, 배추 나물에, 국 끓여먹을 정도로만 자라줘도 좋겠다는 바람이다. 어쩌면 여린 배추로 김장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조금 덜 자라도 상관없다. 삶아서 냉동시켜 놓으면 올겨울 내내 맛있는 배춧국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땅은 공들 인대로 돌려주는 솔직한 친구라는 것은 알지만, 배추 심으면서 김장배추로 잘 자랄 확신에 차 있지 못한 나는 나쁜 농부인가? 게으른 자신을 인정하는 솔직한 농부인가?그저 한 가지 마당을 사랑하는, 땅을 사랑하는 농부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