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약비다. 남녘에선 태풍 "찬투"가 지나가느라 제주도엔 비가 엄청 왔고 피해도 우려된다는데, 몇 주 동안 가물었던 마당에 솔솔 뿌려주는 비를 보면서 "약비"라고 고마워하니 한심스럽다. 사람 사는 것이 이런 것이다. 내일모레 결국 닥쳐올 일이라도 당장 오지 않는다고 안달하질 않나, 때론 나만 피해 가는 것 같아 우쭐하기도 하는, 부끄럽지만 이기적인 인간의 내면이다.
지난주 동네를 돌며 지인 집의 울타리에 까맣고 조그만 열매가 다닥다닥 달려있는 것을 보았다. 물어보니 산초나무라 했다. 산초나무는 운향과에 속하며, 향이 강한 제피나무와 비슷한 느낌이 있으나, 주로 기름을 짜서 먹는다고 한다. 지인의 산초나무를 보면서 어릴 적 외갓집에서 제피나무와 더불어 있던 생각이 났다. 외할머니와의 추억도 생각나고, 마당에 한그루 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마당에 뿌리내린 여러 나무들을 파시는 영농조합 사장님께 전화해보니 다행히 있다 해서, 기쁜 마음으로 지난 목요일 산초나무 한그루를 들였다. 나무가 몇 년은 된 듯, 열매도 달려있고 잎이 풍성해 보기 좋았다.
마당 한쪽으로 터를 잡고 땅을 파는데 약간 진흙끼가 있는지 물을 부어도 금방 빠지지 않았다. 마땅히 심을 데도 없어 그냥 잘 심어 줬는데 어째 잎이 싱싱해 보이지가 않았다. 2~3일 지나니 잎이 늘어지고, 마른 듯했다. 이웃에게 물어보니 혹 물이 잘 안 빠져서 그런 건 아닐까 해, 지인의 밭에서 마사토를 퍼와 옆 땅에 섞은 후 산초나무를 살짝 옮겨 심었다. 일주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물 주고, 오며 가며 사랑으로 품었다. 그래도 어제 보니 상태는 더 좋아지진 않았다. 나무를 판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산초열매를 잘라내! 잎도 가지도 좀 쳐내고..." 전화기 너머로 큰 소리가 들린다.
"다 잘라야 하나요? "
"많이 잘라내~ 뿌리가 살도록 다른 데로 양분이 가지 않도록..."
"아까워서 어떡해요?"
"잘라내! " "그래야 내년에 열매를 맺을 수 있어~~"
사장님께서는 열매나 잎으로 양분이 가지 않고 뿌리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는 것이 우선이니 잘라내라고 한 것 같다. 열매가 예뻐서 샀는데 떼어 내려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욕심이 남아, 위로 오른 몇 가지의 열매는 남겨두고 잘라냈다. 오늘 아침에 만져보니 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내가 잘라내지 않아도 제 스스로도 견디지 못해 떨어질 판이었다. 어제 다 잘라냈어야 하나... 조금 남겨둔 그것 때문에 혹 죽는 건 아닌가 하면서도 마지막 가지까진 쳐내지 못했다. 아직 가을도 채 안됐는데, 내년 봄을 기약하고 지금 이 나무를 발가 벗겨야 한다니... 나무는 인간보다 몇 계절을 앞서 가는 것인가.
마당을 가꾸고 흙을 밟으면서, 원치 않았지만 나의 철학적인(?) 면모를 많이 보게 된다. 언제부터 이렇게 감상적이었던가 하면서. 그도 그럴 것이 씨앗을 뿌리고 꼬챙이뿐인 가지를 심을 때, 그 아이들이 자라날 미래를 보지 못한다면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눈앞에 보이는 것들은 "어쩌면 이미 다 허상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땅은, 자연은 "미래"다. 그럼에도 미래지향적인 땅의 근본은 "과거"다. 지나간 것들, 사라진 것들, 죽은 것들이 모여서 흙이 되고 땅이 되었고 자연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숨을 쉬는 것은, 잎을 틔우고 열매를 내어주는, 살아있는 "현재"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공존하는 것이 "땅" 마당이다.
봄에 잎이 피고 여름이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나비와 벌들은 물론 온갖 벌레들이 초목과 함께 한다. 공생하는 자연의 원리다. 가을이면 잎을 떨어뜨리고 헐벗은 몸으로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한다. 초목은 화려한 과거를 다 벗어 버리고, 알몸으로 오직 생명줄만 잡고 겨울을 난다. 모든 것을 벗어버리는 것은 내년 봄, 미래를 기약하기 때문이다. 흙으로 돌려보낸 초목의 화려함은 땅을 거름지게 하고 결국은 초목에게 양분으로 되돌려 준다. 겨울을 난 나무는 봄이 되면 훌쩍 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무 활동도 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찬바람 모진 추위 속에서도 꿋꿋이 서 있기만 할 뿐이었었는데...
삼라만상이 그렇듯이 죽음 위에 삶이 서고,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다시 개척해 나아온 인류의 역사, 면면히 이어온 대자연의 순환과 재생산이야 더 말해 무엇하리. 수천 년을 이어온 많은 세대 중의 하나에 불과한 현대인들의 지나친 욕망이 결국은 자연을 건드리게 되고, 기후변화 등의 재앙으로 이어진 지금까직도, 자연의 원칙은 거짓 없는 "희생 위에 성장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열매 보고 즐길 욕심으로 모두 잘라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며, 내려놓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본다. 담담하게 자연의 이치를 받아들이고, 올라가면 내려와야 하고 내려가면 올라갈 일도 생긴다는 것을 인정하며 모진 어두움의 길이라도 결국은 지나갈 터널에 불과하다는 것을 믿으면 마침내는 환한 길을 마주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로 특히 힘들어하는 지인 분들에게 한그루 나무처럼 그저 "지금만 견뎌보자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가장 내려놓기 힘든 자존심까지 내려놓고, 한그루 나무처럼 버티기만 해 보라고...
산초나무를 나는 왜 샀을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 풍성한 잎에 까맣게 열릴 산초열매 속에 어릴 적의 추억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어서 마당에 그대로 옮겨 놓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산초나무는 제가 있던 곳에서는 제 빛을 발했지만 낯선 곳인 우리 마당에선 적응의 순간이 필요했고 처음 적응하는 그 환경을 뿌리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산초나무만 볼 줄 알았지, 마당에 자리 잡아야 할 산초나무를 제대로 알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