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배추 나란히 나란히 청년 배추로 자리 잡아갑니다.

아기배추 성장기 3탄

by opera

9월 5일, 배추 모종을 뒷 채마밭에 심어 주었다. 남들보다 늦게 심어 잘 자랄 수 있을까 염려했었지만, 염려와는 아랑곳없이 튼실하게 자리 잡았고 이웃 지인들의 말대로 가을 김장배추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자라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아기배추들의 성장이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과도 같아서 브런치에 글을 두 편 올렸다. 1편은 "아기배추 나란히 나란히 시작합니다"는 제목으로 9월 10일 게재하였고, 2편은 "아기배추 나란히 나란히 올라갑니다"로 9월 15일에 글을 올렸다.


배추는, 자라나는 아이들처럼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이를 보는 사람에게 "자람의 위대함"과 "생명 성장의 감사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보는 사람에게 자연의 축복은 함께 나눠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들게 만들어 오늘 아침 다시 글을 올린다.


아침에 만난 배추는 이미 훌쩍 커 버린 청년이었다. 이제부터야 말로 진짜 "배추"로써의 성장 도전에 부딪히게 될 아기배추들, 아니 이제는 "아기배추"라기엔 성숙해진 "청년 배추", 드디어 "김장배추"로써의 도전을 시작하는 단계로 올라간 청년 배추가 되어 있었다.


자라남의 역사 (9월 5일, 9월 15일, 9월 19일 아침)

처음 심었을 때와 일주일 후, 오늘 아침까지 사진을 찍어 비교해보니 엄청나게 자랐음을 볼 수 있다. 배추는 중부지방에서는 8월 하순에서 9월 상순에 남부지방에서는 9월 상순에서 중순 사이에 심어, 11월 초에 수확을 한다. 약 두 달 정도 키우면 속이 꽉 찬 김장배추로 자라는 것이다. 파종할 경우에는 그보다 좀 일찍 심어야 한다. 나는 모종을 사서 심었기에 뿌리는 잘 내린 편이었다. 두 달 정도의 기간 동안에 속이 꽉 찬 배추로 잘 자라야 김장하기에 적합한 좋은 배추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진 물만 주면 잘 자랐지만, 앞으로는 무엇보다 배추에 벌레가 먹지 않도록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보기만 해도 예쁘고 튼튼하고 영양분도 많아 보이니, 벌레가 가만둘 리가 없다. 약 주지 않으려고 나무젓가락으로 벌레 잡기 시작하다 결국은 감당 못해 한두 번은 약한 약이라도 뿌려주어야 한다고 한다. 이제부터가 중요한 것이다. 아침에도 자세히 보니 연초록의 배춧잎에 벌써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 다른 생명들이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저도 살아가기 위해서...


이웃들이 배추 속이 생기기 시작할 때 벌레들이 알을 까므로 이때 약을 조금이라도 줘야 한다고 얘기를 한다. 날아다니는 나방 같은 것들이 배추 속 깊이 알을 까서 벌레가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젓가락으로 열심히 잡아줘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다. 배추를 먹을 생각이면 조금이라도 약을 주지 않으면 힘들다는 것이다. 먼저 살짝 뿌려주고 생기면 잡고, 어느 쪽이던 배추가 벌레로 인한 고통은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심었을 때와 25일이 지난 오늘 아침 모습


부모의 지극한 보살핌 아래 자라던 아이들도 사춘기를 지나 청년이 되면, 개척해 나가야 하는 인생길에서 한두 가지씩 어려움과 고통스러운 일을 겪기 시작하게 된다. 장년이 되고, 인생의 깊이를 경험해가며 성장하는 당연한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임에도 여린 배춧잎에 벌레가 파먹어가듯 아픈 고통과 흔적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 제목이 구멍 난 배춧잎을 보면서 잘 지은 제목이란 생각이 씁쓸하게 든다. 자세히 보니, 벌레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벌써 잎에 구멍 난 배추가 있다. 무언가가 갉아먹은 것이다. 벌레가 생기기 시작하면 금방 뜯겨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염려가 생겼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아주 연하게 살짝 뿌려주기로 했다. 청춘이야 언제나 아프게 성숙해 왔지만, 코로나 팬데믹인 이즈음의 청년들이 겪어야 하는 아픔은 더 크다. 오죽하면 "영끌 세대" 란 말이 나왔을까...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는 서글픈 생각을 잠시라도 해본다.


어쩌면 모종을 심고 짧은 기간에 자라나 마침내는 제 몸을 내어주는 배추의 삶은 압축시켜보는 인생과도 같다. 제법 배추 티가 나면서 잎이 벌어지고 속을 채워갈 채비를 하는 지금이야 말로 인생의 항해 길을 출발하기 위한 청춘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 어찌 고귀한 청춘을 배추에다 비유하랴마는 나는 감히 "청춘 배추"라는 말도 해본다. 그저 물이나 뿌려주고 잘 자라면 뽑아먹고, 누렇게 뜨면 뽑아버릴 수도 있는 배추가 아니다. 모종을 심고 물을 주며 바라는 마음도 애정과 사랑에서 발원되는 마음이다. 배추는 사랑을 먹고 자란다. 우리 마당의 배추가 땅 발을 받아,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았다고 하지만, 아니다. 쳐다보는 나의 관심과 얼마만큼 탈없이 자랐나 바라보는 마음이 청년 배추로 자라나게 한 듯 싶다. 하물며 배추도 사랑을 먹고 자라는데, 거쳐갈 수밖에 없는 청춘시절의 청춘들도 누군가의 애정 어린 관심과 바라봄을 조금 더 받게 된다면 분명 보다 든든히 인생의 뿌리를 내려가며 지나갈 것이다.


비록 지금은 힘들어도 청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축복이요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미 오래전에 그 고귀함과 위대함, 아름다움을 칭송했던 수많은 작가들과 위인들의 경험이 증명하듯이 청춘은 고통스러워도 반드시 꽃을 피우고야 마는 아름다운 과정이다. 지금을 견디고 버티며 두발을 힘차게 디디면서 이겨내면 좋겠다. 오늘 아침 우리 집 채마밭의 "청년 배추"들은 팔을 활짝 벌리고 뿌리를 딛고 하늘을 향해 지금 비상하고 있다.



벌레 먹기 시작한 배추들


비상하는 청년 배추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 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 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 은 투명하되 얼음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쌓인 만물은 죽음 이 있을 뿐이다.

(민태원 선생의 "청춘예찬" 수필 중에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