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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Dec 21. 2021

나는 걷는다

나는 걷고 싶다




시간 여유가 있는 요즈음엔 강아지들이 상전이다. 평소 많은 시간을 함께 놀아주지 못해 혹 분리불안증이라도 생기지 않았을까, 신경 쓰며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준다. 사람은 제시간에 못 먹어도 아이들 밥은 아무리 바빠도 제시간에 준다. 몇 시에 일어나던 상관없이 7시 반 정도면 강아지들은 아침식사를 한다. 두 번째로 중요한 일은 산책시키는 일이다. 보리는 워낙 산에 함께 다니던 녀석이라 지금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승리는 살도 찌고 다리가 약해 포대기에 넣어 안고 걷는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하게 되면 걷기의 주인공은 아이들이 된다. 보리의 스텝에 맞춰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보다 빠르게 씩씩하게 잘 걷지만, 나이 든 강아지의 관절을 생각해 멀리 걸을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과 내가 걷는 산책길은 왕복 7~8 천보 정도로 제대로 걸으려면 많이 부족한 거리다.


나는 등산도 좋아하지만, 걷는 것도 좋아한다. 특히 시골로 이사 온 후로는 걷는 코스도 좋아, 시간 되는 대로 자주 걷는 편이다.  오랫동안 품어온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순례길을 걷는 것이었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는 스페인의 갈리시아주 자치 공동체의 수도이고,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은 프랑스와 스페인 등 여러 루트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는 대성당까지 가는 도보순례를 말한다. 산티아고 대성당이 종착지인 이유는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 있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야고보의 상징인 조가비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이정표로 표시되어 있다.


순례길은 중세 유럽의 성지로 오래전부터 있었던 길이고, 중세 유럽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이 길을 걸어 그들의 신앙을 증명하기도 했다. 대부분 프랑스(피레네 산맥)를 거쳐 스페인으로 갔으며 길은 800여 km에 이른다. 프랑스에서 출발하는 순례 루트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있다. 모 기자를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된 후로는 여느 나라 사람들보다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청년들도 많이 다녀왔다는 유명한 길이다. 순례길은 어쩌면 자기 고난을 통한 종교적 회심의 길임에도 이제는 각자 인생을 되짚어보는 "회귀와 그리고 전진의 수련 길"로 인식된 듯하다. 물론 거기에 건강의 보탬까지 더해져 있다.


우리나라라고,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것을 못 만들 이유 있을까? 싶은 마음에 제주도의 올레길이 먼저 만들어졌고 "걷기"열풍일면서 다투기라도 하듯 각 지자제마다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웬만한 지역에는 각각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멋진 길들이 많아 우리나라 어디서든 걷는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모일간지에 소개된 걷기 명소를 찾아본다. 이 길들은 순례길처럼 오랫동안 걸어야 하는 길은 아니고 지역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몇 시간 동안 걸을 수 있는 길 위주로 소개하고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19500445#home


걷는 이유야 걷는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걷기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긴 철학의 시간을 요구하는 자기 수행의 한 방법이기도 했다. 오래전 한국에도 방문해 자신의 걷기 철학을 피력했던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글이 떠오른다.

그는 1999년~2002년까지 실크로드 12,000km를 걸으면서 길 위에서 자신이 경험한 삶을 세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알다시피 지혜란 길을 따라 걷는 중에 얻어지는 법이다

무엇이 나를 자꾸 앞으로 떠미는 것일까?

도대체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이길래 잠에서 깨자마자 나를 길로 내던지는 것일까?

내게 진정 어려운 일은 걷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것이었다.

~~~~

거의 모든 종교에서 순례의 전통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몸의 단련을 통해 영혼을 고양하는 일이었다.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머리는 신 가까이에 가 있다고나 할까.

보이오티아 인들이 굳게 믿었던 걷기의 지적인 측면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

홀로 외로이 걷는 여행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게 만들고,

육체의 제약에서 그리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사고하던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저 "나는 걷는다" 1편 아나톨리아 횡단에서)


2020년 한달을 목표로, 산티아고로 떠날 계획을 몇 해 전부터 세웠었는데, 코로나는 내 희망을 부수고 말았다.

요즘 폐쇄된 일상에 몸도 마음도 무디어져 희망뿐 아니라 의지도 빼앗겨 버린 것 같다.

아무래도 올 겨울에는 아이들 산책시킨 후 나만을 위한 걷기를 다시 시작해야 할 듯하다.

게으른 의지를 다독이고, 코로나가 떠나간 후 찾아갈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위한 연단이 필요하다.


어떤 의미를 찾으려 애쓸 필요도 없다.

스치는 바람에 눈뜨고 명상하는 것이며,

몸은 자연의 흐름에 맡기며,

마음은 따라 움직이는 길이다.


인생은 길이다.

그 길 위를 걸어가는 것이 삶이다.

그러기에 "걷기"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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