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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Jan 18. 2022

꽃을 피우는 힘은 어디서 올까

우리 삶에서 꽃을 피우는 힘은 어디서 올까




천리향이 꽃을 피울 것 같다. 꽃 몽우리가 발그레 얼굴을 붉히면서 조금씩 통통해진다.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지난 주말에 피울 것 같은 기대감을 안겨주더니 오늘 아침엔 조금 더 큰 듯해 보였지만, 아직 그대로다.

거실 한쪽에 작은 썬룸(?)도 만들어 주고 "오직 너의 개화를 위해 " 높은 나무 스툴 위에 정성스럽게 올려둔다. 거실을 환히 비추고 있는 생명의 햇빛을 너는 더 높고 깊게 받으라고... 꽃몽우리까지 품고 있는 아이니, 차별하듯이라도 특별 대우를 한다.


작은 천리향은 작년 연말에 구입한 것이다. 이웃 친구 집에 갔더니 칠 년이나 키운 천리향이 피어 온 집안을 향긋하게 물들이고 있어 나도 한그루 구입한 것이다.

집 밖은 살을 에이는듯한 추위가 점령하고 있어도 따뜻한 집안을 감싸는  진한 향기는, 봄이 곁에 와 있는 착각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사실 우리 집에도 천리향이 몇 분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꽃이 잘 피질 않아 죽은 아이도 있고 살아있던 아이는 혹 마당의 기운을 받으면 잘 살까 싶어 땅에 옮겨 심었다. 단속을 잘해줬어도 올겨울을 견딜까 싶다.


인터넷 검색하고 적당한 가격의 작은 천리향을 주문했다. 그런데 마침 주문한 천리향을 배송하는 업체가 파업 중인 업체였다. 막 파업을 시작했던 때라 배송시킨 꽃 가게 주인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지 천리향 배송이 시작되었고 집하소에 있다는 문자, 배송 완료되었다는 문자까지 왔지만 우리 집에는 오지 않았다. 톡으로 보내신 분께 몇 번씩 문의를 했다. 도착하지 않아서 아무래도 이 아이가 중간 어디에 지체되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분은 포장을 잘해서 얼진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너무 지체되니 염려는 된다고 하셨다. 일단 물건을 받아본 후에 상태가 좋지 않으면 다시 반송하라고 했다. 일주일이 넘었지만 오지 않아서 보내신 분께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으니, 취소하겠다는 문자를 드렸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날인가 갑자기 물건이 배송되었다.


도로 보내려다 살아있는 생물이 고생한 것을 생각하고 그냥 풀었다. 얼마나 철저하게 포장을 하셨는지, 여러 겹 신문을 깔고 싸서  근 열흘 동안에도 크게 얼진 않은 것 같았다. 한참 신문지를 제거한 후 천리향을 만나니 이파리가 조금 누렇게 아니 까맣게 된 것도 한두 개 있었지만 초록색 이파리가 많고 생생한 것 같아 보였다. 취소했지만, 이대로 왔으니, 그냥 받겠다 상태를 말씀드렸더니 좀 언 것 같다고 두고 보면서 더 이상해지면 연락 달라고 했다. 택배사의 파업으로 그분도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창고에 있던 중 토분을 꺼내 부엽토와 흙을 섞은 후 옮겨 심었다. 옮겨 놓고 보니 제법 모양이 잡혔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천리향은  상태는 아진 것 같고 왔을 때 작게 보이던 꽃 몽우리가 점차 자라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제는 필 생각을 하는지 몽우리가 조금씩 조금씩 커지고 붉은빛이 미세하게 하루하루가 다르게 붉어진다. 어느 택배 물건 중간 보관소에서 사라질 뻔했던 천리향이 우여곡절 끝에 일주일도 넘게 방황하다가 우리 집으로 온 것이다. 제 복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저기 옮기면서 빛이 가장 잘 드는 곳에 스툴을 두고 그 위에 떡하니 자리를 잡아주니, 자그마한 자태로도 푸르름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저 오늘내일 필 것같이 커져오는 꽃몽우리들이 기대에 부응해 피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밖엔 없다. 그런데 꽃몽우리커져 가는데, 떨어지는 잎도 많아지니 약간 염려가 된다. 물을 적게 준 것일까? 너무 많이 준 것일까? 여러 생각 속에 만약에라도 꽃필 모양만 보이고 이대로 주저앉고 말더라도 이 아이는 우리 집에 올 아이였기에 그냥 사랑으로 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정성을 쏟게 만들었고, 푸르름을 주었고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가 온 집안으로 가득 퍼지게 할 것이라는 기대감만으로로 이미 그 값은 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를 쓰신 미당 선생님의 섬세하고 따뜻한 감성은, 마당에서든 분에서든 꽃피는 화초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조금이라도 공감할 것이다. 꽃 몽우리가 맺히기까지도 힘들지만 맺힌 꽃몽우리로 끝나는 아이들도 많이 봤다. 커다란 감성을 자랑하는 목단이나 장미가 아닌 흔하디 흔한 들꽃까지도,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사력을 다하는 듯싶다. 꽃들에게도 아이를 해산하는 것과 같은 시간과 고통을 있어야 한 송이의 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누구의 삶에라도 결과를 피워내기는 그렇게 힘든것이다.


꽃은 식물의 자손이고 벌이나 나비가 꽃가루를 수정해 꽃을 피우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배워왔다. 최근에는 낮과 밤의 길이, 빛을 받는 시간, 생장 온도, 그리고 때로 적당한 저온에 노출되어야 하고, 관여하는 생장 호르몬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등 과학자들은 꽃이 개화하는 원리를 더 상세하게 과학적으로 규명해 냈다. 사실 이 겨울이 꽃 피기에 적합한 조건은 아니다. 다만 커다란 온실에서 꽃몽우리는 생겨서 우리 집에 왔는데, 정작 중중 요한 개화를 하지 못한다면 조건을 맞춰주지 못해서인 것이니, 보살피는 사람의 부족 때문이다.


친구의 말대로 개화하려는 시기에 더 많은 영양분과 줘야 꽃이 잘 핀다는데 한 두 개 꽃 아준 영양제가 부족한 건지,  식물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한 나는 염려가 된다. 아니 어쩌면 천리향의 지금 모습이 지극히 정상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 개화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꽃은 어떤 힘으로 꽃을 피워낼까?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는 꽃 한 송이 만들어 낼 수 없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온갖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희로애락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을 만들 순 없다. 다만 곁에서 함께 느끼고 살 수 있을 뿐이다.   

꽃 몽우리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천리향도 제 몫을 다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있을 것이다. 오늘 밤 자고 나면 향기를 뿜어 낼지도 모르겠다. 천리향이 알게 모르게 염려하며 기울인 작은 관심과 사랑이 꽃을 피우게 할지도 모른다.


꽃 피우려 애쓰는 천리향을 보며 사람 사는 삶이나 별반 다름없는 초록 생명의 여정을 공감한다. 우리들 역시 주어진 삶 속에서 각자의 꽃을 피우기 위해 매일의 삶을 다져가고 있지 않은가. 사실 삶 이란 기울인 노력과 관심만큼 성과와 보람으로 점철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살아가면서 받아야 하는 작은 성과가 원하는 대로 주어지지 않기에 많은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라도 다시 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초목은 받아들임과 기다림과 도전함으로 반복되는 일상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한 해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죽는 일도 없다. 천리향은 기울이는 관심과 사랑으로 꽃을 피울 것이고 설사 오늘의 꽃몽우리가 그대로 떨어진다고 해도 다시 꽃 몽우리를 맺히고 말 것이다. 꽃피울 듯 말 듯 한 천리향을 보고 있는 내 마음도 작은 결실을 피우기 위해 하루라는 터미널로 열심히 걸어가고 있다.

                         

 

1월 13일 찍은 꽃 몽우리 모습들, 분홍 빛이 발그레 올라온다



1월 17일 아침 사진, 분홍빛이 더 붉어지고 몽우리가 약간 통통해졌지만, 잎은 더 떨어진다.

천리향이 빨리 피면 향기 맡으면서 낮잠을 즐기고 싶다는 승리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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