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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Jan 14. 2022

30년 된 의자에 앉아 보실래요?

오래된 것들에 대한 사랑은 다가올 날들에 대한 희망이다



나는 오래된 물건을 좋아하는 편이다.

오래된 것들에 대한 나의 애정은 이전에 브런치 글에 올린 적도 있다.

https://brunch.co.kr/@okspet/138

이유 없이 그냥 좋아하는 편이다. 오래된 물건 속에는 어떤 작은 역사(추억)가 있고 추억이 있고 그리움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좋지 않은 의미로 생각한다면 누군가의 손으로 옮겨 다닐 수밖에 없었던 아름답지 못한 추억이 있다 할 수도 있겠다. 혹자는 그래서 남이 가졌던 것은 가지지 않는다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달리 생각한다. 무언가를 썼을 당시에 그 누군가는 행복했고 따뜻한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을 거쳐오면서 그들의 일상을 또 함께 했을 수도 있다. 인생은 결국 돌어서 제자리로 오는 것이라 보면 따뜻한 추억들이 담긴 물건일 수도 있다. 혹여라도 오래된 물건을 구입할 때에는 깨끗이 소독하고 살균하는 다음에 그것을 아끼고 잘 쓴다. 물론 모든 오래된 물건을 소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일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문구류나 소품(티스푼 등)을 좋아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고(古) 물건을 좋아하긴 해도 골동품을 수입할 그런 수준은 절대 아니다. 그저 보고 즐기고 때로 사용할 수 있는 작은 물건들, 두고 볼 가치가 있거나 변하지 않는 의미가 있는 그러한 것들을 좋아한다. 여행할 때마다 그 지역의 벼룩시장에서 오래된 그림이나 티스푼 문구류 등이 나올 경우, 비싸지 않은 것들은 사서 모으는 취미도 가지고 있다.


이른 아침 바깥은 영하의 기온이지만 늘 하듯이 환기를 시킨다. 유난히 햇살이 좋아 옷장문도 열고 환기를 시켜준다. 문득 오래된 남방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아직도 판매되는 D** 제품인데 L*패션에서 내놓은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이 들어간 체크 남방이었는데 서울 명동에 있던 지금은 없어진 "쁘**"이라는 백화점에서 특별 세일로 좋은 제품을 싸게 팔았을 때 샀던 기억이 난다.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때라 부푼 마음으로 마음에 드는 옷을 싸게 사서 기뻐했던 생각이 난다. 순모라 드라이를 해야 되기 때문에 편하게 막 입을 수는 없었지만 해마다 겨울이면 몇 번씩 입고 드라이해서 걸어 놓곤 했다. 지금 생각하니 25년은 넘은 듯하다. 목둘레를 보니 살짝 닳았고, 소매 끝도 곱게 닳았다.


이 옷은 이미 오래전에 수명을 다했을지 모른다. 누군가가 내 소매 끝을 유심히 봤다면 닳은 부분을 볼 수 있었을 것이고, 옷이 없어 저런 옷을 입나 할 수도 있었겠다. 그래도 이 셔츠엔 윤기가 아직도 흐른다. 옷걸이에 걸어두면 샀을 때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다. 색깔은 물론이거니와 색감도 그대로 풍긴다. 반들거리는 윤기와 살아있는 색감을 보면 활달했던 학창 시절이나 사회 초년병 시절의 부풀었던 꿈이 지금도 투영되는 것 같아 좋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은 세월이 갈수록 그 진가가 올라간다고 하는데, 이 옷이 몇 벌이나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유명 작품 못지않다 여겨진다.


언젠가 세계적인 의류 디자인 잡지에서, 옷을 벽에 디스플레이시켜서 액자를 대어 전시한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나의 이 옷도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옷을 만든 곳에서 이 글을 본다면 혹 연락이 오지도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까지 살짝 든다. 이 옷을 보면 땀 흘리며 살아온 지난 시절도 한 번씩 생각나고, 철학자는 아니지만 나의 삶뿐 아니라 90년대, 이천 년대를 거쳐 이제 21 세기를 달려가는 급변해 온 우리 사회의 일면이 함께 느껴지기까지 한다. 곱게 자라 제 살이 들여다 보일 정도지만, 그래도 아직도 고운 빛을 잃지 않은 자태가 고맙기도 하고, 나아가는 나의 여정에 옷장 속에서만이 아니라 겨울이면 한 번씩 꺼내 입을 애정 하는 친구 같은 옷이다.


오래된 애장품 중에 거실 한편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물푸레나무로 만들어진 호피무늬의 안락의자가 있다. 이 아이는 30년도 다돼가는 것 같다. 지금이야 이런 안락의자는 얼마든지 값싸게 살 수 있지만 첫 자취를 시작할 때 아버지가 사주신 추억의 의자였다. 가구의 명가라고 했던 리**제품이었다. 천으로 된 것과 호피무늬 두 가지였는데 천으로 된 것을 사고 싶었지만 재고가 없어서 호피무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닿는 것이 싫어서 위에 얇은 면천을 씌워 사용하곤 했다. 그래도 앉아보면 등도 받쳐주고 편해서 어떤 의자보다 사랑받은 의자였다. 이 의자는 생의 변화에도 항상 함께 했고, 가족의 그리운 추억도 담겨있는 의자다.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 로리가 이빨이 나기 시작하면서 잇몸이 근질거려 소파에 앉아서 의자를 갉으면서 근질근질함을 해소를 했다. 처음엔 야단을 쳤지만, 이젠 그 선명한 자국이 하나의 추억 마크가 되어 버렸다. 의자에 칠을 해 새것처럼 만들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칠하지 않았다. 그 자국은 우리 가족들에게 힘들 때도 견뎌낸 하나의 추억 자국이 되어 현재를 감사하며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로리는 오래전에 떠났지만, 신기하게 이 의자는 강아지들이 좋아한다. 아마 앞이 올라오고 뒤가 내려간 안락의자라 제 몸이 편한 자세로 누울 수 있어서 그런진 모르겠다. 어떤 때는 앉아서 쉬고 싶지만 아이들이 차지하고 있어 쉬지 못할 때도 있다. 요즘 유행에 뒤쳐진 호피무늬 구경하기도 힘들지만, 호피무늬 물푸레나무 안락의자는 몇십 년을 걸쳐서 우리 집에 따뜻한 온기와 쉬어가는 안락함과 회복되는 치유의 힘을 주는 고마운 장소를 제공하는 의자다.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면 오래된 물건은 빼내야 하는 게 맞다고 한다. 오래되어 쓸모없어진다면 빼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아직도 쓸만한 것을 빼내는 게 쉽지는 않다. 원래 버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물건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서라기보다는 그 물건에 얽힌 가족들과 또 내 주변의 이웃들과 상관된 작은 추억과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30년 된 의자는 지금도 새것 같다. 의자야 낡았지만, 그래서 언젠가는 앉는 순간 혹 푹 꺼져버리지는 않을까 여겨지기도 하지만, 등부분에 나무로 받혀놓았으니 그럴 염려는 없을 것이다. 의자에 앉으면 강아지들이 뛰어와 무릎에 앉는다. 지나간 세월은 돌이켜 보상받을 수 없으나,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은 추억과 버무려져 좀 더 따뜻하고 정감 있게 그려진다.


살이 에이도록 추운 아침, 잠깐 나와서 마당을 둘러보면서 오래된 것들에 대한 향수를 떠올려 본다.

언젠가는 나도 오래된 것에 불과해질 텐데,

그렇게 될 그때에도

누구에게, 누군가에게

지금처럼

사랑받을 수 있을진 모르겠다.

설사 그렇지 못한다 해도 염려하지 않으리라.

오늘, 바로 "지금, 지금이야 말로 즐길만한 가장 오래된 순간이지 않은가?"

오늘을 즐길 수 있기에 오래된 것들과의 교감도 즐기며 누릴 수 있는 것 아닐까.

한 조각 겨울 햇살에 기대어 살아가는 마당 아이들에게, 따사로왔던 지난 계절 피웠던 꽃들과 열매를 기억하며 또다시 찾아볼 "얼마 후의 봄"을 그려보며 버티라고 말하는, 더불어 오랜 것이 되어가는 겨울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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