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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Jan 27. 2022

남 바꿔 보려는 마음, 버리는 힘

다른 사람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는 데는 큰 힘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쉬운 말이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만약에"가 아닐까 싶다. "그때 그랬더라면..." 이란 말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다. 지난 일들에 대한 개인적 후회감은 쉽게 지울 수 없는 일이지만, 잊고 살아야 하는 것이 맞다.  오늘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 말을 떠 올린다. 거창한 박애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조직에서든 일상생활에서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먼저 생각해주려 노력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물론 소박하고 부족한 나의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일들 중에 실행하려고 애를 썼지만 난관에 부딪쳐서 이루지 못한 때가 많았다.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때 조금만 도와줬더라면..." 물론 그 일이 실행되었더라면 조직은 훨씬 큰 발전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일은 반드시 원하는 방향으로만 풀리지 않는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추구하는 방향이 다를 수 있어 모두 한 방향으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의욕이 넘쳐 일을 바로잡기 위해 애를 쓴다. 사명감으로, 충성심으로 때로는 본성적으로 고치기 위해서 애를 쓴다. 내가 열심에 넘쳐 사니, 남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나의 열심도 남의 눈에는 다른 면으로 보일 수도 있는 법, 남에게 까지 열심을 강요(?)하는 내 생각을 상대방은 오해할 수 있다.


"제 맛에 산다"는 말은 진리다. 아무리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실 그런 사람도 없고...) 남보다 못났다 하면 싫은 법이다.  인간 위에 인간 없고 인간 아래 인간 없다고 하지 않는가.

설혹 충고하는 마음이 상대방을 위한 진심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생각에 따라서는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래서 충고도 고려해가며 해야 한다. 하물며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라는 것은 더 힘든 일로 생각해야 한다. 남을 바꿔보려는 내 마음을 다스리면 된다. 상대방을 보는 내 잣대를 그의 잣대로 맞춰주면 된다. 그냥 둬야 한다. 강제로 그를 고쳐서라도 힘께 할 경우엔 더러 고친 그것 때문에 탈이 날 확률도 있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내가 바뀌는 게 낫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외치면서 죽어간 갈릴레오처럼 인류를 바꿀만한 획기적인 역사의 한 장이 되기 전에는 아니 될 수도 없는 지금, 목숨 바쳐 뛰어든다 한들 나를 위해 손을 내밀어 줄 자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적당히"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서글픔도 있지만 한두 번 해도 바뀌어지지 않는 상대방에게는 그만 멈추는 것이 낫다. 멈추지 못한다면 스스로 상처받기 십상이다.


마음에 병이 들어 병원에 가면 " 적당히 쉬어가며 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적당히 하라는 것이다. 적당히 하지 못해 어려움을 많이 겪은 나는, 이 말에 적극 공감한다. 사람 때문에 울고 웃는 힘든 조직 생활에서 인간관계는, 먼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나의 잣대에 비추어 조금이라도 고쳐보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함께 추구할 목표가 있을 때는 많이 힘들 수 있다. 그래도 상대방의 그는 "생긴 그대로 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주라. 때로는 이해하기 힘들기에 이해해야 하는 힘이 인생 면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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