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자리에 누울 때까지 "이어짐"의 연속이다. 이어지는 "행함"의 연속이다. 우리 몸의 신비에 대해선 전문가라도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생명"이라는 온기 있는 신묘막측한 존재는 한계 있는 인간으론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육체와 정신, 신경 뉴런으로 사고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에 대해선 익숙히 알고 있다. 먹고 에너지를 보내고 비워내며 반복되는 신체 대사활동도 제멋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혹여라도 막되기 시작한다면 탈이 났다는 것이다.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가야 할 길을 가고,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가지 않는 선택과 반복의 연속이 삶이다.
살아가는 대부분은 습관화되어 당연한 일들의 연속이라지만당연한 것도, 그저 되는 것도 없다. 순간순간의 판단과 결정의 이어 짐이다. 좋아서 하는 일도, 싫어서 하는 일도, 몸에 밴 일도 새롭게 시작하는 일도, 마음의 결단이 뇌로 이어져 행동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무의식의 대사활동이나 의식의 선택도 순간순간결정의 결과다.
산으로 가야 할지 바다로 가야 할지, 이리 갈지 저리로 갈지,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사소한 일에까지 결정을 해야 하는 세상에서 "결정장애"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정도로, 넘치는 정보에 둘러싸여 현대인들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마침내는 가만히 있어도 "적절한 것으로, 대충, 아무거나"가 모나지 않은 간접으로 대신해 주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풍요로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이 너무 풍부하기에 절박하지 않기에 굳이 모나게 결정하지 않아도 돌아가는 현실 때문에 스스로의 의지를 세우기 싫은 것은 아닐까.
의식에서만 결정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무의식의 결정은 전적으로 내 시스템에 저장된 결과의 반복이다. 그래서 습관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무의식의 결단은 평소의 습관에 기인한다. 결국 평소 어떤 태도로 임했는지에 따라 무의식적인 앞으로의 일도 결정될 수 있다는 의미다. 흐름에 맡기다 보면 우유부단해진다. 너그럽게 여유 있게 양보하며 산다고 밍그적거리는 태도는 우유부단한 무의식을 키워갈 수 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가 있지만, 다른 길로 갔어도 어떤 후회든지 동반될 수밖에 없었을 길이다. 작가는 어느 쪽으로든 결정하여 그 길을 걸어갔다.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바라보다가 마침내 택한 그의 길에 함께 서 있는 평소의 나를 본다. 결정해야 할 일을 그때그때 미련 없이 해 냈다면 어쩌면 많은 시간을 줄일 수도 있었을 터이건만...
그의 시가 오랜 후에도 음미되는 것은 어쩌면 "결정"트라우마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현대인의 마음을 잘 표현해서인지도 모른다. 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일까. 결정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결정되지 못한 일"들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평소 스스로의 철학과 삶의 태도로 결정된 무의식의 결단이 매 순간 이뤄지는 스스로의 육신을 생각해본다면, 작은 결단이라도 스스로의 철학에 맞춰 선택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결단의 힘이 필요하다. 작은 결단부터 해야 큰 결정으로 이어질 수가 있다. 매 순간이 선택과 비우기의 연속으로 점철되는 과정에서 사소한 일이 발목을 잡지 않도록 흔히 말하는 우선순위, 스스로의 우선순위를 세워 놓고 결단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언제나 있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은 쉽게 버리기 힘들다. 그래서 버려야만 한다. 스스로가 걷고 있는 길에 용기와 격려를 부어주며 오늘도 선택과 결정에 바쳐질 힘이 인생 면역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