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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핀 목단 꽃 한 송이...

금각이 아직도 피지 않았다. 자목련

by opera


벌써 2주가 지났다. 얘를 사 와서 네 집이라며 정원 한편에 정성껏 심어준 지가...

지난 3월 11일 서양 목단(금각)이라고 그냥 목단보다 두배나 비싼 돈 주고 산 것인데, 꽃 몽우리가 봉긋이 올라와 있어 이제 곧 꽃도 볼 수 있겠다 여겨져 산 것이다. 마침 심고 난 다음날 온종일 봄비가 내려 뿌리도 잘 내려앉겠다 싶었다. 그런데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잎도 약간 늘어진듯했다. 아직 적응이 안돼 그런가 보다 싶어, 꽃 몽우리에 지지대를 세워주고 힘들지 않도록 끈으로 살짝 잡아 주었다. 며칠을 기다렸다.

매일 물을 주면서 "고개 들어 ~ 고개 들어봐 ~"를 반복했다. 그래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일주일 되던 지난 목요일에 꽃가게에 전화해서 얘기했더니, 이상하다고.. 두 화분을 들였는데 자기네 가게에 남아 있는 것은 싱싱하다고 하면서 조금 더 두고 보라고 하신다. 나는 "이번 주말까지 고개 못 들면 가지고 갈 테니 바꿔주세요" 하고 전화를 끓었다. 지난 일요일에도 역시 고개를 들지 않았다. 고개는 들지 않았지만, 꽃 몽우리가 마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약간 발 그래 졌다. 잎도 마찬가지다. 꽃송이 늘어진 게 안쓰러운지 모든 잎도 줄기도 같이 늘어져있다. 금각이 죽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축 늘어져 있긴 하지만, 죽진 않았다는 신호를 보낸다. 가지 옆에 작은 순은 올라온다. 며칠을 관찰한다. 작은 순이 조금 더 자랐다.


꽃가게에 다시 전화를 했다. "아마 올해는 꽃 보기 힘들 수도 있겠네요. 환경이 바뀌어서 적응하느라 그럴 수도 있으니, 정 아니다 싶으면 가져오시고, 아니면 올해만 지내보세요"라고 하신다. 아무래도 땅에 심긴 첫날밤이 추웠나 보다. 그런데 같이 심은 다른 얘들은(으아리, 불두화, 목단) 자리 잡고 잘 자라고 있는데... 참 예민한 아이구나. 지금껏 정원에 심어줘서 이런 얘는 없었는데. 오히려 화분에서 죽어가려는 녀석들을 땅에 심어주니 잘 살아났는데 말이다.

얘는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하다, 문득 든 생각! 아 꽃 몽우리다! 그렇다 꽃 몽우리를 품고 있었구나!

미련한 나는 꽃 몽우리를 피우기 위해 많은 힘이 든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꽃을 피운다는 것도 얘들에게는 산고의 고통을 겪는 것과 같이 힘들고 숭고한 일이지 않겠는가. 그런 얘를 똑 같이 취급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담 온전히 나의 불찰이다 생각하니, 다시 파내어 분에 심는 고통을 줄 순 없었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며칠밤을 미니 온실로 씌워 주었다. 그래도 한번 숙인 고개는 들 줄 모른다.

내 탓이요 내 탓이다.

이제 고개 들지 못해도 너는 건강히 뿌리만 내리면 되리라, 마음 바꿔먹으니 더 측은하고 기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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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숙인 금각, 지줏대를 세워주다. 이틀째) (함께 심었던 목단과 으아리(클라멘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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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째, 아직도 고개 숙이고 있는데, 붉은빛은 더해졌다) (옆가지에서 새 순이 올라오고 있다)


금각에 신경 쓸 동안 마당 한편에 있는 다른 아이들이 먼저 꽃을 피운다. 한그루 있는 살구나무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심은지 몇년 된 자목련은 처음으로 꽃망울을 터트린다. 작년에도 봉긋하게 올라와서 꽃 몽우리려니 하고 얼마나 기대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꽃은 안 피고 잎이 떡 나와 버렸다. 올해도 같은 몽우리가 올라와서 꽃 몽우리인지, 잎 뭉치인지 몰라 관찰만 했는데, 며칠 전에 몽우리가 벌어지고, 붉은 속살을 조금씩 보인다. 나무는 작은데 꽃 몽우리는 몇 송이나 달렸다. 얼마나 기대가 되는지 모른다. 그런데 얘는 온전히 피울 수 있을까. 조금씩 벌어지는데도 며칠이 걸리는데. 속살 본 지가 나흘이 넘았는데, 아주 아주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 빨리 안 핀다고 안달하다, 문득 저만큼이라도 꽃 몽우리를 터트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미안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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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꽃 트임의 일주일.. 이틀째, 나흘째, 닷새째, 아무래도 다음 주나 돼야 활짝 필 듯하다)


금각은 내게 큰 교훈을 주었다. 자줏빛 속살을 조금씩 내보이고 있는 자목련도 깨달음을 준다.

이른 봄에 피는 매화도 산수유도, 많이 달려있는 꽃들이라고 쉽게 쉽게 몽우리를 터트리는 것 같았지만,

아무도 그런 아이는 없는 것이다. 벌들의 고생이 있었고, 각자의 모양대로 세상에 활짝 핀 꽃을 내놓기 위해 무진 얘를 쓰는 것이다. 보기 좋아 구경하고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을 아무렇게나 밟아버렸다. 세상에 아무렇게나 밟혀야 하는 것들은 하나도 없는 것인걸.

자연은 꽃 한 송이 피우는 데도 저렇게 얘를 쓰는데 나는 주변에 너무 소홀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봄비 답지 않게 많이 내리는 오늘 비가, 막 벌어지고 있는 자목련의 꽃 몽우리를 상하게 하지는 않을지 염려되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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