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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 꿩 대신 닭, 닭 대신 풀

by opera


되는 일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안 되는 일도 없는 듯한 날씨 때문인지 늘어진 몸처럼 마음도 개운찮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지라 이른 아침 강아지들과 산책을 나섰다.

요즘은 샐리가 와있어 승리는 강아지 망태기에 넣어 메고, 보리와 샐리는 걸려 동네로 테크 길로 산책을 나간다. 치와와 승리는 혹 자기를 데려가지 않을까 봐 산책 준비를 하는 순간부터 짖어댄다. 아니 말하는 것이다. "나 빼놓고 가면 안 돼요" 계속 "앙앙"거리니 시끄러워 짜증이 날 때도 많다. 사실 몇 번 안 데리고 간 적도 있으니까... 우는 아이 젖 준다고 시끄러워서라도 안 데리고 갈 수가 없다. 망태기에 넣고 세 마리를 데리고 집을 나선다.


강아지들은 밥 먹는 것보다 산책을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걸 알기에 의무적으로라도 나올 수밖에 없다. 사실 얘들은 마을길로 산길로 다니면서 누군가의 흔적(다른 강아지들의 **냄새 일 수도 있다) 위에 제 영역을 표시하고 온갖 냄새(얘들에게는 향기일 것이다)를 찾아 킁킁거리며 스트레스 해소를 한다. 나야 운동하는 셈 치고 걷기 위주로 나가지만, 얘들은 세상의 모든 향기를 찾는 여정인 듯 여기저기 헤치고 다닌다.


강아지들을 씻겨 놓고 뒷마당에 나가보니 채마밭 옆으로 잡초들이 수북하다. 지난주에 뽑은 듯한데...

며칠 가지도 않는다. 어쩔까 망설이다 한 녀석을 톡 건드리니 쏙 빠진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뿌리를 살짝 잡고 들어 올리는 대로 뽑히는 것이다. 풀이 쏙 뽑히니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그래, 오늘은 너희들을 뽑아 주리라"

"잡초로 태어나서 맘껏 펴보지도 못하고 뽑히는 신세가 너희들의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너희는 금방 또 나올 테니 오늘은 나의 밥이 되어 보아라~~~"

쏙쏙 뽑히는 풀, 잡초들을 보면서 유치하게 농담까지 나온다. 아이들이 문방구 앞에서 "두더지 잡기"를 하면서 스트레스 풀었던 것처럼 나는 쪼그리고 앉아 잡초들을 뽑아낸다. 답답하고 뭉친 마음을 털어 내듯 한 녀석 한 녀석 손마디로 잡고 뽑으니 잘 뽑혀 나온다.

방망이로 두드리는 것처럼 뽑을 때마다 나름의 카타르시스까지 느끼며 "이열치열" 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시골 사는 작은 즐거움 아니겠는가.

몇 평 안 되는 채마밭에 여러 채소들을 심어놓고 제때 보살피고 정리해, 필요한 부식거리로 잘 가꾸지도 못하는 무능한 초보 농사꾼이 "오늘 너희를 뽑아버리며 스트레스도 해소해 보리라"며 늘어진 마음도 잡념들도 함께 뽑아 내보내는 즐거움을 누린다


밭이 깨끗해져 가며 쌓여가는 잡초들을 보니 문득 미안하기도 하다. 그동안 풀 멍으로 눈과 마음에 안식을 주고 복잡한 생각의 미로를 풀어줬던 초록의 잡초들, 제 몫을 하고도 남았는데... 뽑혀 나가도 아무 원망도 않는 늘어진 모습에 어쭙잖은 상념까지 곁들인 풀 뽑기를 하는 중, 갑자기 드러누운 풀들이 외친다.

"그런데 내 이름은 아십니까?"

풀들이 뽑혀 나오면서 털어내는 흙속에서 아우성치고 있다.

"내 이름이라도 아십니까?"

내가 무슨 잡초 인지 아느냐고? 왔다가 이름 한자 알리지도 못한 채 뽑혀 가는 많은 종류의 풀들이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러고 보니, 마당에는 온갖 종류의 풀을 뽑아내면서도 나는 얘들의 이름도 모른다.

문득 이름을 부르며 이름을 알아주기에 살아가는 관계의 세상인데... 잡초라 하더라도 이름은 있을 터, 풀들의 이름이라도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한 시간도 안돼 텃밭 쪽이 훤해졌다. 며칠 있으면 풀은 또 날 것이다. 게으르지 않다면 열흘 내로 다시 뽑아야 할 것이다. 다음에 뽑을 땐 잡초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뽑으리라. 배수구 쪽에 씀바귀가 하나 있길래 그건 또 뽑지 않고 뒀다. 왜? 욕심 때문이다. 씀바귀나물은 먹을 수 있다니까... 물론 씀바귀나물 한 번도 해먹은 적 없지만 이게 욕심이다. 뽑는 김에 다 뽑아버리지, 한 뿌리 미련... 욕심을 남겨둔다. 땅과 더불어 지내며 배워가는 비움의 가르침 속에서도 때론 이런 자잘한 욕심으로 인생 양념을 치곤 한다.

꿩 대신 닭? 닭도 못 먹었던 복날의 아쉬움도 풀을 뽑아내며 함께 뽑혀 나간 듯 한 복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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