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브런치북
이 맛에 마당있는 집에 삽니다
11화
대봉감이 또 떨어졌습니다
충고를 남기고 떠난 대봉감
by
opera
Aug 3. 2022
아래로
일주일 내내
멜랑꼴리 하게 내리는 비는 방울방울 소식을
흘러내립니다.
전선줄에 일렬로 앉아
떠남을 위한 만남의 담소
로 아쉬움을 대신하듯
비 오는 아침이라도 제비
들은 분주합니다.
태풍 소식이 있어도 바람은 심하지 않음을 위안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라도 전하기라도 하듯...
간밤에 "너는 안녕했느냐"는 간곡한 마음으로
데크를 돌아 뒷마당 감나무를 향합니다.
몇 년 만에 처음 열매를 맺은 "감나무"라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기 시작할 때부터
아기 보듬듯 다정한 마음으로 돌봐 왔건만
아니
, 사실은 어찌 돌봐야 할지도 모르는 "돌보미"인지라
사랑을 담아 하루하루 자라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었습니다.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았던 감나무에
생각지도 않게 많은 열매가 달린 것을 보고
"올해는 대봉감 나눠먹을 수 있겠구나~!"
기쁜 기대감으로 빨리 가을이 오기만 기다렸지만
어느 날 아침에도 뚝 떨어지고,
비가 심했던 날도 떨어지고
커가는 사이에
많은 아이들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남은 아이들은
이제는 제법 큰 아이가 되
어 저를 매달고 있는 가지가 부러질까 염려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떨어진 감들은 그냥 보내기 아쉬워 며칠이고 초록의 자태를 남겨봅니다.
그리도 많이 달렸던 대봉감은
이제 스무 개도 남지 않은 듯합니다.
오늘 아침도 나가보니 역시 하나가 떨어져 있습니다.
어제까지 초록의 잎 속에서
빛 고운 자태를 뽐내며 달려 있었는데...
조금 어렸을 때는 감꼭지를 달고 떨어졌는데,
굵어진 다음에는 몸체만 떨어집니다.
이젠 제 몸이 본체를 이어주는 꼭지를 못 견디면
스스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아쉽지만 떨어지고야 말 녀석이었던 것입니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빨갛게 물들어가는 자태를 뽐낼 수 있을 대봉감이
몇 개나 될까 욕심 어린 염려를 하는 나를 보며,
떨어진 대봉감은 말합니다.
"너를 모질게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아느냐,
네가 놓지 않고 끝까지 불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정녕 제대로 알고 살아가느냐..."라고
꼭지도 없이 떨어진 대봉감은
진심 어린 충고로
익어보지도 못하고 떠나는 청춘을 대신합니다.
p.s. 유익종 님이 부르는 비 오는 날 청량한 위안을 주는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를 들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v5XT2gVb_I
keyword
대봉감
비
가지
Brunch Book
이 맛에 마당있는 집에 삽니다
09
복날, 꿩 대신 닭, 닭 대신 풀
10
이 맛에 마당 있는 집에 삽니다
11
대봉감이 또 떨어졌습니다
12
가을 준비, 채마밭을 갈아엎으며
13
가을 준비, 배추를 심었다
이 맛에 마당있는 집에 삽니다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15화)
72
댓글
5
댓글
5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opera
라이프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정원 가꾸기 마음 가꾸기 그림일기
저자
정원 가꾸며 흙에서 배워가는 자연 속 일상의 다양함과 여행으로 얻는 인문기행기를 쓰고 그리며, 순간의 이어짐을 소중히 여깁니다.
구독자
1,278
제안하기
구독
이전 10화
이 맛에 마당 있는 집에 삽니다
가을 준비, 채마밭을 갈아엎으며
다음 1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