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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준비, 채마밭을 갈아엎으며

고마운 채마밭에게

by opera


채마밭은 열일을 했다.

쌈 상추, 청상추, 적상추, 쑥갓, 깻잎, 고추, 겨자잎, 샐러리, 로메인...

그리고 토마토, 가지, 오이, 참외...

봄, 작은 몸뚱이에 심기는 온갖 채소들을 품고

혹서와 장마를 겪으면서도 제 몫을 충분히 해줬다.

쌈채소로 풍요롭게 해 주고

잡초와도 견주며 이기고 살아왔다.


토마토는 사방으로 가지를 뻗치고

예년과 다르게 키도 훌쩍 자라 많은 꽃을 피웠다.

한그루에 몇 개의 지줏대를 세워야 할 정도로

옆으로 위로 퍼져갔다.

긴 장마에 뜨거운 햇볕을 많이 못 쬐어 그랬는지

맛이 조금 덜한 것도 있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식탁에 르도록

많은 수확을 안겨주었다.

토마토 옆의 가지 세 그루는 토마토 세에 밀려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몇 개의 열매를 냈을 뿐이다.

온몸을 칭칭 감고 위로 옆으로 올라가는 오이는

살구나무, 감나무가 제집인양 뻗어가고

꽃보단 잎이 더 무성했다.

무성한 잎 때문에 노각이 되도록 발견하지 못한 아이들도 몇 있었다.


지난 목요일 작심하고 채마밭을 뒤집었다.

사람 키보다 컸던 토마토 밭,

살구나무를 휘감고 뻗어나갔던 오이 잎

구분도 힘들게 뒤엉켰던 채소들을 깡그리 뽑아냈다.


미장원에 다녀온 듯 깔끔하다.

고맙고 감사한 작은 채마밭에 퇴비를 두 포대 뿌려주었다.

그동안 고생했던 몸뚱이에 영양보충이라도 되길 바라며...

고마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금요일 내린 비로 냄새까지 받아들였다.


햇살 좋은 오늘 아침,

채마밭을 갈아엎는다.

가을배추를 심기 위해 밭고랑을 만든다.

한 뙈기의 밭이지만 제 몫을 하고도 남았다.

제 몫의 가능성은 끝이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걸까.

여름 채소를 주고 가을배추로 겨울 양식도 준다.


한 번씩 갈아엎을 수 있기에 가능한 것일까?

온몸을 태우고 갈아엎어 비워지기에 가능한 것일까.

마음밭도 한 번씩 갈아엎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머릿속으론 갈아엎는다지만,

속을 태워 털어내고 새로운 것으로 바꿔 심지 못하니

나는

한 뙈기 밭보다도 못한

하릴없는 속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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