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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맛에 마당 있는 집에 삽니다

새로 만들어준 수경 화분 속의 자유로운 영혼

by opera


빗방울이 이틀 전에 만든 커다란 수경분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금붕어 두 마리가 자유롭게 비를 맞으며 힘찬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몇 송이를 피웠던 연꽃이 올해는 딱 한송이 피고 말았습니다. 그저 좁은 집에 두어 해를 그냥 지내다 보니, 자라지도 못한 듯싶습니다. 물에 잠긴 흙을 파낸다면 아마 뿌리로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습니다. 분을 옮겨야 할 것 같아 더 큰 것을 주문했는데, 마침 윗 집 지인이 연꽃을 옮길 큰 수경 화분을 구했다고 보러 오라 합니다.

서둘러 올라 가보니 한아름에 안지도 못할 커다란 수경 화분에 연꽃을 옮기고 금붕어도 놀고 있습니다.

"웬 금붕어예요?"

장날 시장에서 큰 연꽃 분에 금붕어 넣고 키우는 것을 봤기에 자신도 그리해보고 싶어 화원에 물었더니, 커다란 수경분과 금붕어까지 몇 마리 줬다고 합니다. 분에 깔 하얀 자갈도 세 봉지나 샀다고...

그러면서 먼저 연꽃을 넣었던 수경분을 가져가겠냐고 물어봅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것은 직경 42센티였는데, 지인이 쓰던 것은 50센티나 되는 것입니다.

"너무 커서 힘들 것 같은데요?"

그래도 금붕어가 놀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 가져옵니다. 바닥에 마사 흙이 약간 깔려있어 간신히 들 정도로 무거웠습니다.

주황색과 검은색의 금붕어 두 마리도 얻어옵니다.


주문했던 수경 화분은 아직도 발송이 안 돼 취소를 하고, 새로 가져온 커다란 수경분에 물을 부어가며 흙을 씻어 냅니다. 여러 번 헹궈도 누런 물이 나옵니다. 지금 있는 분에 비하면 너무 큽니다. 나쁜 성분이 우러나길 바라면서 물을 채워둡니다.

가져온 금붕어는 작은 연꽃분에 넣어 둡니다. 수초도 있고 보기엔 너무 좁아 보여 염려가 됩니다. 그래도 꼬물거리며 헤엄치는 새 생명을 보니 좋습니다. 사실 물을 좋아하는 편이라 작은 마당 연못도 생각했었지만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우연찮게 간이 연못?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금붕어를 보니 좋지만 문득 걱정이 앞섭니다. 남향집이라 햇볕이 강해 수경분의 물이 뜨거워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여름에 정원용 호스 풀어놓으면 호스 안의 물이 뜨거워져 강아지들 목욕도 가능할 정도니, 수경분을 둘 위치가 적당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냥 욕심 비우고 작은 것에 둬야 하나, 뜨거운 날씨엔 적당히 옳길 수도 있으니..."

고민하다 대문 옆에 향나무 아래 자리가 어떨까 싶었습니다. 물론 오후엔 햇살이 많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 있는 장소보단 햇살이 덜 할 거 같습니다.

물을 따러내고 향나무 밑에 적절히 자리를 잡고 동그란 바닥돌을 놓은 후 위에 수경분을 놓습니다.

커다란 수경분의 자리가 제법 괜찮은 듯합니다. 이제 수경분을 꾸며야 합니다.

데크 앞에 놓여있는 작은 옥돌과 흰 자갈을 파내어 깨끗이 씻어 수경분에 넣습니다. 아무래도 오래 노출되었으니 금붕어에게도 해가 되지 않을 듯싶어서입니다.

여러 번을 헹궈도 아주 맑아 지진 않습니다. 지인이 자기네도 그랬지만 괜찮다며 금붕어들이 며칠째 잘 살고 있다 합니다. 헹구기를 반복하고 이번에 모양이 있는 큰 돌을 넣습니다. 금붕어들이 재밌게 다니라고 나름 꾸며 줍니다. 커다랗고 판판한 돌을 깐 후에 작은 연꽃분을 그대로 넣어봅니다. 푹 잠기지 않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흙을 파내고, 낮추고 조절합니다.

마침내 작은 분을 넣어도 금붕어들은 충분히 왔다 갔다 할 정도의 높이로 정착시킵니다.


"지금 넣어도 될까요"

"괜찮을 거예요. 잘 살 거예요"

작은 연꽃분을 새로 만든 수경분에 넣으니 푹 잠깁니다. 나름 멋진 수경분이 탄생했습니다.

주홍과 검은색의 금붕어 두 마리는 그새 작은 분속에서 나와 큰 수경 분속으로 넘나들며 헤엄치고 있습니다.

"금붕어들이 잘 자랄까요?"

"잘 자랄 거예요"

나의 관심과 욕심은 끝이 없나 봅니다.

"그래 마당 있는데, 하고 싶은 것 해봐야지 못할 이유가 뭐 있나"

금붕어가 너무 더워 오래 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혹 그리되는 경우라도 금붕어도 연꽃들과 어울려 자유로이 헤엄치며 즐겁게 한 세상 보내는 것이니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하나 더 염려스러운 것은 수경분에 모기 유충이 많이 꼬이지는 않을까 하는 것인데, 지인은 미꾸라지를 넣으면 된다고 합니다. 미꾸라지를 사서 넣을까 하다 미꾸라지가 바닥을 파대면 수경분이 혼탁해져 금붕어에게 좋지 않을 듯싶어 인터넷을 찾아봅니다.

미꾸라지는 금붕어도 잡아먹을 수 있으니 넣지 말라는 얘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금붕어가 모기 유충을 잡아먹기도 한다는 반가운 얘기도 있습니다.

"그래 일단 얘들이 어떻게 적응하나 보자"

종일 몇 번이고 수경 화분을 확인합니다. 말없는 연꽃이야 그대로지만 금붕어들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 걱정되어서 입니다. 햇살이 뜨거운 오후에 손가락을 넣어 봅니다. 뜨뜻합니다. 실온이 30도를 넘나드는 날이니 미지근하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걱정이 앞서 연잎을 들춰봐도 금붕어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보다 잠긴 연꽃분을 들어내 봅니다.

아! 분 밑에서 금붕어들이 나옵니다. 금붕어들이 더워서 잠겨있는 분 밑으로 숨었었나 봅니다.

"다행이다. 이제 안보이더라도 들춰보진 않을게..."

제가 사는 세상이 흔들거릴 정도였을 테니 얼마나 놀랐을까요. 미안한 마음과 안심된 마음이 교차했습니다.


아침이면 새 밥을 챙깁니다.

저녁에는 길냥이 밥을 챙겨줍니다.

금붕어 밥을 챙겨주면서 설마 길냥이 녀석이 금붕어를 건드리진 않겠지 하는 염려가 갑자기 듭니다.

"양심은 있겠지... 제 밥을 챙겨주고 있는데..."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함께 하는 다른 생명들을 돌아보며 살게 합니다.

좋아하는 것과 더불어 살기 위해선 그에 따른 노력과 책임이 반드시 요구됩니다.

마당의 꽃들과 나무들을 더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선 진꽃을 잘라주고 병든 잎도 떼어내고 수시로 관심의 눈길을 둬야 합니다.

욕심 많은 성정에 움직이는 생명, 금붕어까지 새로 들였으니 수경분에 관심과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쩌면 사서 고생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연꽃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금붕어를 보는 기쁨은 초록의 초목들이 주는 평안한 즐거움과 또 다른 기쁨입니다. 침묵하는 자유 속에 움직이면서도, 전혀 영향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온전(穩全)한 자유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것들과 함께 하기 위해선 책임을 져야 합니다. 때론 책임지기 싫어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낼 수도 있지만 함께 하는 즐거움을 공유한다면 책임도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책임 좀 지면 어떻습니까...

즐겁게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행복한 것이 아닐까요.



빗방울이 새로 만든 커다란 수경분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따다닥~~따닥" 상쾌한 리듬에 맞춰 금붕어 두 마리가 자유롭게 비를 맞으며 흐린 하루를 힘차게 열어주고 있습니다.


더운 날씨엔 바닥에 숨어있는 금붕어

비를 즐기며 유영하는 금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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