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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맛에 마당있는 집에 삽니다
12화
가을 준비, 채마밭을 갈아엎으며
고마운 채마밭에게
by
opera
Aug 2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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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마밭은 열일을 했다.
쌈 상추, 청상추, 적상추, 쑥갓, 깻잎, 고추, 겨자잎, 샐러리, 로메인...
그리고 토마토, 가지, 오이, 참외...
봄, 작은 몸뚱이에 심기는
온갖 채소들을 품고
혹서와 장마를 겪으면서도 제 몫을 충분히 해줬다.
쌈채소로 풍요롭게 해 주고
잡초와도 견주며
이기고 살아왔다.
토마토는 사방으로 가지를 뻗치고
예년과 다르게 키도 훌쩍 자라 많은 꽃을 피웠다.
한그루에 몇 개의 지줏대를 세워야 할 정도로
옆으로 위로 퍼져갔다.
긴 장마에 뜨거운 햇볕을 많이 못 쬐어 그랬는지
맛이 조금
덜한 것도 있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식탁에
오
르도록
많은 수확을 안겨주었다.
토마토 옆
의 가지 세 그루는
토마토 세에 밀려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몇 개의 열매를 냈을 뿐이다.
온몸을 칭칭 감고 위로 옆으로 올라가는 오이는
살구나무, 감나무가 제집인양 뻗어가고
꽃보단 잎이 더 무성했다.
무성한 잎 때문에 노각이 되도록 발견하지 못한 아이들도 몇 있었다.
지난 목요일 작심하고 채마밭을 뒤집었다.
사람 키보다 컸던 토마토 밭,
살구나무를 휘감고 뻗어나갔던 오이 잎
구분도 힘들게 뒤엉켰던 채소들을 깡그리 뽑아냈다.
미장원에 다녀온 듯 깔끔하다.
고맙고 감사한 작은 채마밭에 퇴비를 두 포대 뿌려주었다.
그동안 고생했던 몸뚱이에 영양보충이라도 되길 바라며...
고마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금요일 내린 비로 냄새까지 받아들였다.
햇살 좋은 오늘 아침,
채마밭을 갈아엎는다.
가을배추를 심기 위해 밭고랑을 만든다.
한 뙈기의 밭이지만 제 몫을 하고도 남았다.
제 몫의 가능성은 끝이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걸까.
여름 채소를 주고 가을배추로 겨울 양식도 준다.
한 번씩 갈아엎을 수 있기에 가능한 것일까?
온몸을 태우고 갈아엎어
비워지기에 가능한 것일까.
마음밭도 한 번씩 갈아엎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머릿속으론 갈아엎는다지만,
속을 태워 털어내고
새로운 것으로 바꿔 심지 못하니
나는
한 뙈기
밭보다도 못한
하릴없는 속물인가 보다.
keyword
텃밭
가을배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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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가꾸며 흙에서 배워가는 자연 속 일상의 다양함과 여행으로 얻는 인문기행기를 쓰고 그리며, 순간의 이어짐을 소중히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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