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 강아지들을 마당에서 놀린다. 샐리와 보리는 땅에 내려놓고 승리는 가방에 넣어 마당으로 나왔다. 아이들은 마당 구석구석을 다니며 볼일을 본다. 보고 또 보고 몇 번씩이나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특히 서울에서 온 샐리는 자연에 굶주린 아이처럼 실내 배변을 하지 않고 실외 배변을 선호해 하루에 세 번 이상을 안고 나와 마당에서 볼일을 보고 들인다.
해가 아직 있으니 강아지들은 "신나라~~"다닌다. 어느 정도 풀냄새를 맡은 후엔 마당을 둘러놓은 테크에서 놀도록 강아지들을 부른다. 보리는 부르는 대로 올라와 꼭 붙어 다닌다. 보리는 오른쪽 다리가 좋지 않아 시야를 벗어나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쓴다. 승리는 왼쪽 뒷다리가 많이 안 좋아 걷는 것은 실내로 충분해 바깥에 나올 때는 전용 가방에 넣고 다닌다. 녀석은 가방에 앉아서도 좋으니 반드시 나가게 해 달라는 듯 운동 나가려면 아우성이다. 가방에 얌전하게 앉아 사방 간섭을 하고 다닌다. 세 녀석들 모두 열 살을 넘겨 노견 축에 드는지라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샐리는 마당에 풀어놓으면 채마밭도 다니고, 사방으로 돌아다녀 눈에 띄지 않을 때가 많아 자주 부르게 된다. 텃밭에다 올 가을엔 거름도 많이 줄 생각인데, 샐리 때문에 벌써부터 걱정이다.
오늘도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샐리는 생동감! 그 자체다. 사실 강아지들은 먹는 것보다 밖에 나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특히 우리 강아지들은 산책의 맛을 알기라도 하는지 산책을 정말 좋아한다. "이리도 좋아하는데..." 멀리 나가진 못하더라도 마당에라도 나와 스트레스를 해소해줘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까지 들게 만들었다. 종일 녀석들을 데리고 나오긴 쉽지가 않아 해가 뜨겁지 않은 오전에 동네를 돌고 오후 늦게 마당에서 놀리는 나름의 방법으로 강아지들을 돌보고 있다.
오늘도 샐리를 부르면서 데크 위를 걷고 있는데, 몇 번을 불러도 녀석이 나타나질 않는다. 찾아봐야겠다. 창고 뒤편 돌담 밑에는 가시 많은 산딸기나무가 많아 다니지 못하도록 되어있는데, 혹 거기까지 간 건 아닌가 싶어 염려된다. 나이는 많아도 제일 발랄하고 나대는 게 푸들 특성인지, 샐리는 정말 똥꼬 발랄 강아지다.
"샐리야 샐리야"
뒷마당 자목련 나무 옆 데크 쪽에서 샐리가 보인다.
"여깄었구나~"
그런데 샐리 옆 밭쪽으로 뭔가 노란 것이 보인다.
들춰보니 세상에 참외가, 제법 큰 참외가 노랗게 달려있다.
"이게 웬일이람?"
봄에 상추, 가지, 오이 토마토 등을 심을 때 재미 삼아 참외 모종도 세 그루 사 왔었다.
식구들이 참외를 좋아하고, 혹 참외도 달리려나 하는 심정으로 밭 둘레로 세 그루를 심었었다.
다른 야채들이 자라고 열매를 맺어 식탁을 풍성하게 할 때도 참외는 달리질 않아 가끔 참외 잎을 들춰보면 꽃은 열심히 피우고 있었지만 토마토 같은 열매를 보진 못했다. 데크를 따라 누워가는 참외는 잎을 크게 키우고 꽃도 많이 폈지만, 열매가 달린 것은 보지 못했다. 전주인가? 열심히 찾아봤을 때도 정말 아기 손톱보다 작은 열매를 달고 있는 것을 보고, 참외는 아직 키울 처지가 안되나 보다 싶어 내년에는 잎만 지저분하게 늘어져 가는 참외는 심지 않으리라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참외가 자목련 아래, 둥굴레 옆에 숨어 노랗고 튼실하게 자리 잡고 커가고 있었던 것이다.
둥굴레 잎과 참외 잎에 가려 눈에 띄지 않았고 쭈그리고 일일이 찾아보지 않았기에 가려진 모습 속의 참외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샐리 찾느라 참외까지 보게 된 것이다.
"샐리야 샐리 덕에 참외까지 찾았네~
우리 샐리 덕에 심 봤네~"
이참에 다른 곳에도 있을까 싶어 까칠까칠한 참외 줄기를 하나씩 훑어가며 뒤집어 보기로 했다.
세상에, 대추나무 아래 초록 참외가 노랑 참외보다 약간 더 큰 초록 참외가 달려있었다.
참외가 두 개나 달렸었는데, 왜 내 눈에는 띄지 않았을까?
꽃은 계속 피고 있었고, 군데군데 아기 손톱만 한 열매를 맺고 있는 것도 있었다.
이런 크기의 참외가 달렸다면 중간 정도 자라난 참외도 있어야 할 텐데 전혀 없고 달랑 두 개의 소식도 없이 달려있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혹시 누가 달아놓고 갔나?"는 우스운 생각을 하며 매달려 있는 줄기를 찾아 흔들어도 보았다.
옆에 있는 샐리에게
"우리 샐리가 시골 와서 잘 적응하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샐리 덕분에 맛있는 참외 먹겠네~고마워~"
샐리도 칭찬받는 줄 아는 듯 지긋하게 바라본다.
참외를 만져보니 얘기 솜털같이 여리고 부드럽지만, 싱싱함이 살아있는 뽀송함이 느껴진다.
며칠 후면 맛있게 먹어볼 참외를 생각하며, 바닥에 닿은 엉덩이 쪽은 아직 색이 들지 않은지라 살짝 돌려놓고 참외 잎으로 가려놓는다. 혹여라도 새들이 쪼아 먹을까 싶은 염려 때문에...
내년에는 심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참외는 제대로 심어 키워봐야겠다는 의지의 목록으로 바뀐다.
큰 욕심부리지 않고 시간 되는 대로 찾아보는 마당과 더불어 사는 삶은 언제나 작은 기쁨이라도 준다. 인간에게뿐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강아지들과 찾아오는 고양이 새들 모든 생명체들에게 이어지는 활력을 준다.
궂은 날씨 속에 밖에 나가지 못해 답답해하는 강아지들을 위해 "잠시 맑음"을 틈타 마당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해 주었을 뿐인데, 생각지도 못했던 노랑 참외 초록 참외를 선물로 받은 행복한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