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pera Apr 09. 2021

스마트폰으로 쓴 스페인 기행기 4

버스안에서, 톨레도



2012.08.30

버스는 열정의 그라나다를 뒤로 하고 톨레도를 향해 간다. 돈키호테의 고향인 라만차는 버스 안에서 지나가면서 운 좋으면 볼 것이라 한다. 오! 그동안 배운 이슬람 문화에 대한 지식으로 나는 인샬랴!


유럽 단체여행은 기차도 타지만 대부분 버스길이 많다. 유럽이라는 땅덩어리 자체가 하나로 이어져 있어,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 보면 여러 부분에서 그들의 뿌리는 연결된 것이 많다. 오늘날엔 EU(European Union. 유럽연합)로 한 울타리 안 연합체로 되어 있고, 비자 없이 출입국도 가능하니, 유럽 땅, 위아래로 이동하거나 국경 넘어 이동할 때도 이질 감은 못 느낀다. 버스 안에서의 일정이 반 이상이니, 여행 시작 때는 약간 답답하고 불편해도 3일 정도 지나면 익숙해져서 편하게 쉬고 잠도 자면서 개인 시간도 즐기는 것이다. 가이드는 긴 버스여행시간 동안 방문지에 대한 여러 얘기를 통해 재밌고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유럽 가이드분들은 상당히 박식한 것 같다. 관련 공부를 하는 분도 많다고 한다.


오늘도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스페인 국내 역사와 내분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며 간다. 스페인은 17개의 자치지방 주로 나뉜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 국가이다. 스페인이 속한 이베리아 반도는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얄타 미라 동굴 벽화로 알려진 선사시대를 지나, 기원전에는 켈트족, 그리스, 로마의 식민지였고 5세기에는 서고트족 8세기는 이슬람 무어족의 지배를 받았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다양한 문화와 언어, 서로 다른 민족으로 융합되어 지금의 스페인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로마의 세계 정복과 기독교 문화의 번성 등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의 배경도 스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1492년 카스티야 왕국의 이세벨 여왕과 아라곤 연합왕국의 페르난도 2세의 스페인 연합군이 무어인을 내쫓으면서 스페인은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을 마침내 마무리된다. 당시 스페인은 카스티야 지방, 갈라시아 지방, 카탈루냐 지방(아라곤), 바스크 지방 등으로 크게 나눠져 있었고, 자치적으로 다스리고 있던 것을 서로 합병 혹은 정복을 통해 통합한 것으로 각 주 자치권이 비교적 인정되었지만, 점차 중앙 마드리드(카스티야) 지방의 권력이 강화되면서 자치권은 약해진다.


세월이 흐르면서, 원래 자치주였던 카탈루냐 지방 (예전의 아라곤 왕국, 주도: 바르셀로나)은 아라곤 왕국의 뿌리를 잊지 않고, 여러 번 독립을 시도한다. 정치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카탈루나 지역은 산업경제가 발달하고 재정 상태도 좋아, 다른 주와 경제적인 격차가 큰 것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최근에는 2017년 10월 10일에 독립 선언하고 카탈루나 지방의회에서는 승인을 했지만, 스페인 법률상 주민투표로 독립여부 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중앙정부에서 인정하지 않았고, 국제사회의 지지도 얻지 못해 무산되었다.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의 레알 마드리드와 카탈루나 주도인 FC바르셀로나팀은 이런 배경으로 같은 민족 팀이지만, 정치적인 분위기를 너무 잘 반영하는 스페인의 유명 축구팀이다. 이 두 팀의 경기는 스페인에서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축구시합이라고 한다.  라이벌 두 팀의 시합을 “엘 글라시코 (EL Classico)”  스페인어로 “신들의 전쟁”  “고전의 승부”라고 한다.  예전부터 두 지역의 감정이 좋지 않으니 팬들도, 응원 대결도 만만찮다.  바르셀로나(카탈루냐)는 "스페인이 아니다"라고 외친다. 카탈루냐는 자체 언어도 있고, 재정 독립성도 확실하고 정치적 뿌리도 있으니 충분히 독립국가가 될 수 있다는 의미 아닐까.


가는 도중에 휴게소에 잠시 들렀는데, Ronaldo라고 새겨진 셔츠를 입고 축구 응원하러 가는 레알 마드리드 팬 청소년들을 태운 대절 버스를 보았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는데, 단체로 축구 관전을 간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들의 축구 열정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레알 마드리드를 목이 터지도록 응원할 것이다.


차창으로 본 바깥 풍경 /  휴게소에서 만난 축구사랑 청년들

    

14세기 중반부터 "무적함대"를 자랑하며, 유럽 최고의 영광을 누리던 스페인은 17세기 이후에 들어서면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중세 유럽을 강타하던 페스트는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까지 스페인에 창궐하여 많은 사람이 죽고, 17세기 심각한 기후변화로 농업이 피폐해져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또한 식민지로부터 흘러 들어온 재물로 충족히 살아 상공업을 성장시킬 필요도 못 느끼고, 외부 개척과 식민지 확보에만 신경 쓰느라 문명 발달의 변화에 대항하지 못해 새로운 산업기술, 공업도 발전시키지 못한다. 백성들은 끼니도 못 채우는데, 귀족들과 왕실은 사치스러운 생활로 국력을 탕진하고, 나라 재정은 어려워져 14세기부터 해상강국으로 세계 정복의 꿈을 꾸어 왔던 무적함대의 주역 스페인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영국한테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18세기 이후 프랑스와의 전쟁, 미국과의 전쟁 등으로 필리핀, 괌 등의 식민지를 잃게 된다.  20세기 초에는 내전으로 혼란스러웠고, 20세기 말 점차 회복하는 듯했으나, 2012년 부동산 버블 등으로 인한 유로존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2015년부터 점차 호전되고 있으며, 스페인은 유럽연합에서 5번째로 큰 경제규모의 시장을 가지고 있어 잠재적인 성장 가능성도 훨씬 크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소중한 작품과 아름다운 건물 등 그 당시의 많은 유산(사치의 유산)은, 엄청난 문화적 가치로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스페인의 관광산업에 힘을 주는 동력이 되고 있다. (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도 비슷할 것이다. 특히 이탈리아는 죽은 선조가 살아있는 후손들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지금 그들 보통사람들의 삶은 너무나 힘들다고 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 역사를 본 다면, 코로나 후의 세상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 염려스럽다. 자유롭게 그곳을 다시 가려면 얼마나 시간이 더 필요할까…)


한국에선 스페인 경제상황이 심각하다고 들었는데, 와서 보니 체감되는 심각함은 느끼지 못했다. 마치 그 문제는 정부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린 우리 생활을 한다는 것처럼 일반 국민들의 생활엔 전혀 지장 없어 보였다. 스페인의 여유 있는 국민성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랜 역사가 만들어 낸 저력과 내성도 있어서 인 것 같다. 지금 스페인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쇼핑 잘하고, 휴가도 2~3주씩 쓴다고 한다. 바다가 없는 세비야 등에서는 한 달 동안 휴가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들에게 삶의 과거, 현재 미래 중에 제일 중요한 건 “현재”라고 한다. 오로지 현재 “까르페 디엠 carpe diem”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사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 해야 할 일도 아주 급한 일 아니면 "마나냐(내일)" “내일 하지 뭐” 하고 미루는 경향도 많다고. 스페인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인 시에스타(점심 먹고 2~4시까지 쉬는 것)도 그래서 생긴 건 지도 모르겠다. 술, 담배를 많이 하는데도, 장수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매사를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삶의 태도 덕일 것이다. 늘 무엇엔가 쫓기듯 살아온 우리 일상과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한편으론 부러웠다.


끝도 안 보이는 지평선이 계속된다. 드디어 풍차마을 라만차가 보이고 있다. 지나가는 차 안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이 황량한 대지를 탈출하여 세상을 향해 나간 돈키호테... 와서 보니 더욱 위대한 걸 알겠다.


톨레도 입성한다. 점심시간에 맞춰 들어와 외곽에 작은 식당에서 스페인 전통음식 빠에야로 점심을 한다. 톨레도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세도시로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1561년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스페인의 수도였고, 가톨릭의 본산으로써 지식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또한 위대한 화가 엘 그레코의 미술관도 있는데, 우리 일정에는 미술관 관람이 없었기에 아쉽지만 대신 산토 토매 성당에 있는, 그를 거장으로 만들어준 유명한 작품을 잠깐 보고 간다고 한다.


톨레도 대성당은 이슬람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슬람 사원을 허물고 1225년부터 1493년까지 지은 대성당으로 오늘날 스페인 가톨릭의 총본산이다. 여러 귀중한 보물들, 유물들과 조각 작품들, 엘 그레코, 지오르다노, 고야의 명화 등 중요한 유물들이 많아 흡사 미술관을 방불케 한다. 짧은 시간 가이드의 안내로 중요한 곳만 둘러보고 나오는데, 금과 은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하고 엄청난 무게의 성물들에 놀란다. 중세 시대 대주교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방도 인상적이었다.


톨레도 대성당의 화려한 중앙 제대 / 톨레도 대성당


성당에 성화가 많은 이유는 중세시대 가난해서 출판물을 취급하기 어려웠고, 문맹자가 많아 눈에 보이는 그림으로 설명해주기 좋았기 때문이라 한다. 성화를 많이 그려야 하니, 당연히 화가의 몸값도 높았고, 좋은 작품과 위대한 화가도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성물은 신심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스페인에 오래된 성당이 많고,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십자군 전쟁 때 유일하게 지원병을 보내지 않은 국가여서, 보상차원에서 성당을 많이 짓게 되었고, 순례길 (산티아고(야고보) 콤포스텔라 등)도 만들었다고 한다. 중세시대 순례길은 유럽 남단의 이베리아 반도와 유럽의 문화교류 및 기독교 신앙(가톨릭)의 의지를 훈련시키는 길이기도 했다. 가톨릭 신도들에겐 이탈리아 베드로 대성당 못지않게 방문하길 원하는 성지가 많은 곳이 스페인이라 한다. 세계 1,2차 대전을 잘 피해 간 것도 1차 대전 때는 중립을 지켰고, 2차 대전 때는 내전으로 나라가 어수선하여 직접적인 참전이 없어 파괴가 적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일행 중에서도 이번 여행을 성지순례 차원에서 온 분들도 있었다. 지금의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는 성지순례길 이라기 보단 인생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는, 개인 삶의 순례 여정을 이끌어 주는 길로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걷는 코스에 도전하기도 한다. 나 역시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는 것을 늘 꿈꾸고 있다. 아마 직장이라는 울타리에 속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삶의 의미와 자유를 돌아보며 이 길을 걷고 싶은 갈망을 가지고 있으리라.


엘 그레코(El Greco)의 걸작“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Burial of the Conde de Orgaz)”을 보기 위해 산토 토매 (Santo Tome ) 성당으로 간다.  당시 어느 누구 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독특한 개성을 가진 중세 최고 화가 중의 하나였던 엘 그레코는 그리스 태생이나, 이탈리아에서 수학하고 스페인에서 활동했다. 위대한 화가들의 특징은 앞서간다는 것일까. 15세기 화가지만 그의 작품은 20세기 표현주의 작품처럼 현대적이다. 엘 그레코는 40년 이상을 톨레도에 살면서 그림을 그렸고, 그가 살던 곳은 엘 그레코 미술관으로 개조하여 운영되고 있다.


입장료를 내고 복잡한 성당 입구로 들어간다. 그림은 성당의 입구에서 오른쪽 벽에, 백작의 실제 무덤 위에 그려졌다고 한다.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대작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찍지 못하게 되어있어 아쉬웠다. 하단은 현세를 나타내어 오르가스 백작을 매장하는 모습, 윗 쪽은 하늘로 올라간 그의 영혼을 성모 마리아와 그리스도가 영접하는 모습이다. 가톨릭 신앙이 지배하던 중세 사람들의 소망이 담겨 있는 그림이었다.


유럽의 오래된 대부분의 도시들이 그렇지만, 특히 톨레도에서의 오늘은 중세의 한 부분에서 지내다 온 것 같았다. 카메라 배터리를 충분히 충전시키지 못해, 사진 많이 찍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 근방에서 묶는다.


톨레도 대성당 /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인터넷 발췌 )




이전 03화 스마트폰으로 쓴 스페인 기행기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