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초목들에게 괜히 미안할 정도로 더운 날이다. 날씨는 어찌할 수 없고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물로 샤워시켜 주는 일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햇살 뜨거운 대낮에는 할 수 없다. 잎이 마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물을 줬어도 낮이면 땅이 바싹 마른다. 마당의 초목들도 매일 관수하게 되면 습관이 된다고 한다. 몇 해 전 주말 생활을 할 때도 일주일 만에 왔어도 완전히 말라죽은 아이들은 없었던 것 같다. 화분에 있는 아이들은 말라죽어도 땅에 심어져 있는 아이들은 웬만하면 말라죽진 않는다. 나무 잎도 마르고 잔디도 바스러질 듯 말라버린 모습이었지만 물을 주면 다음 날 아침엔 초록 화색이 돌아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식물들의 흙과 교류하는 생명력의 신비에 감탄하기도 했다.
대문 담장 옆 배롱나무는 탈피를 해 멋진 옷을 입고 다른 나무에선 보기 어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춤추는 꽃도 예쁘지만 제 살까지 벗겨 가며 만드는, 몸도 아름다운 아이다. "나는 호피 옷을 입은 나무 호랑이로소이다''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매끈한 몸매사이로 수피가 벗겨지며 하얗고(약간은 노란) 보드라운 속살이 드러나고 갈색반점의 얼룩으로 호피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어찌 보니 기린의 무늬처럼 보이기도 해 케냐에서 얼굴 맞대며 만났던 기린이 생각나 당시 스케치한 것을 찾아보았다. 비교해 보니 기린 옷의 무늬는 도형무늬 같아, 배롱나무는 기린보다는 호랑이 옷에 가까워 보인다. 아니, 둘의 무늬를 섞어 놓았다고 할까? 하지만 바로 옆에서 봤던 기린의 기다란 목은 왠지 배롱나무의 수형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배롱나무는 여름을 환히 밝히는 꽃도 아름답고 수형도 멋진 나무! 초목이지만 자연의 동무인 동물의 추억도 불러오니 더 멋진 아이 아닌가! 마당에는 여러 그루의 배롱나무가 있지만 아직은 어리고 이 아이는 키가 2미터가 조금 넘어 수형도 제법 잡히고 수피도 아름답다. 5~6미터 까지 큰다고 하지만 작은 마당이라 3미터까지만 커도 괜찮겠다.
여름 마당의 자연은 고통도 주지만 견디고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도 많다. 배롱나무와 더불어 칠자화도 하얀 꽃을 피웠다. 배롱나무와 칠자화는 대표적인 여름 꽃나무 자매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백일을 간다는 배롱나무나, 여름에는 하얀 꽃을 피우고 9~10월에는 꽃받침이 붉은색으로 변해 일 년에 두 번 꽃을 피우는 모습의 칠자화. 중국에서 황후의 꽃으로 사랑받는 국가 보호종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