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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Nov 05. 2023

은촛대와 계수나무 이파리

 

 일전에 올렸던 "메타 쉐카이어처럼"글을 읽고 이웃 작가님께서 계수나무잎에 다른 재밌는 얘기도 있다고 전해 주셨다.

"계수나무 잎사귀는 하트 모양이어서 사랑스럽기도 해요.

그래서인지 계수나무 아래서 사랑을 고백하면 이루어진다나요~^^"

라는 댓글로 올려 주시면서...


은행잎과 계수나무잎이 뒤엉켜 소복이 쌓여있는 트랙을 돌며 계수나무옆에서 팔을 뻗혀 아직은 이파리인 아이 셋을 거둔다. 살아 붙어있어도 이미 노랗게 낙엽화되어가는 아이이긴 했지만 이파리로 보고 싶었다. 자세히 보니 정말 하트모양이었다.

"아 계수나무는 달콤한 향뿐 아니라 모양도 이쁘구나~"

사실 대부분의 나뭇잎도 조금 길거나 맞지 않아 그렇지, 하트 비슷하긴 한데 계수나무잎은 적당하게 익숙한  하트모양이라 더 돋보였다. 계수나무아래 연인들의 고백은 달콤한 향기가 하트모양의 이파리에 담겨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사랑을 전해 줄 것 같다는 얘기도 생길만했다.


얼마 전에 e***를 통해 구매했던 골동품 은촛대를 받았다. 이전 글에도 올렸듯 나는 앤틱 은 골동소품을 좋아하기에 아주 가끔씩 구매하기도 한다. 주로 펜 종류와 책상 위에 둘 물품이다. 올 성탄절을 생각하며 뒤적거리다 은촛대를 하나 주문했다. 경매보다는 적절한 가격으로 직구하는 편이며 취미정도 가격이고 비싼 것은 사지 않는다^^.

내가 구입한 촛대는 1850년~1899년 사이 영국에서 만들어진 12.5cm 높이의 빅토리아풍 고린도양식 기둥 모양의 촛대(Solid Silver Victorian Corinthian Column Candlestick)내부엔 뭔가로(아마 밀랍?) 충전된 제법 무게 있는 촛대였다. 촛대 말고도  평소엔 문진으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제법 거금?을 주고 샀다. 재밌는 추억거리도 만들면서 거의 3주나 걸려 무사히 도착했다.


해외에 물건을 받으면 먼저 알코올로 소독을 한다. 포장지도 잘 확인한 후 버리고... 원래 깔끔 떨기도 하지만 요새 프랑스 빈대 얘기도 있으니 더 철저하게 한다. 물론 내가 구매한 것들은 철저한 무생물이니 이런 것들이 기생할 이유는 없지만 집안에 들이기 전의 소독은 서로에 대한 의기 때문이다. 알코올로 깨끗이 닦고 난 후, 은세정제를 써 두 번째 몸단장을 시킨다. 판매자가 사진 올리기 전에 광택을 냈겠지만 이제 제집으로 이사를 왔으니 제대로 해야 한다. 마침 은세정제가 떨어져 치약을 솜에 묻혀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준다. 이 아이는 골이 패인 몸매를 가지고 있으니 구석구석 잘 닦고 헹궈준 후 확인한다. 몇 번 닦고 나니 고린도 양식 기둥의 당당한 자태가 돋보이는 멋진 은촛대가 되었다.


요즘 다시 읽는 키케로의 책옆에 두고 사진을 찍어본다. 은빛을 어찌 표현할까, 소소한 그림으로 그리려다 보니 주워온 계수나무 이파리와 묘하게 어울린다 싶다. 고린도풍 은촛대 옆, 친구로 계수나무 이파리를 그려본다. 그리고 보니 사이좋은 벗 같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성격을 가졌음에도 서로에게 멋진 친구처럼.

어디가 통하는 점이 있을까...

억지로 갖다 붙이려는 욕심인진 몰라도, 둘은 현재를 초월한 무한대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고나 할까?


땅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계수나무지만 이미지의 계수나무는 달나라까지 이어진다. 그곳엔 마주 보고 있는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으며 햇볕이 뜨거울까 계수나무 이파리는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쳐다보게 되는 동그란 달에도 계수나무는 토끼들과 다정하게 지내는 듯하다. 계수나무는 달나라 꿈을 연상시키고 사이좋게 살아가는 토끼연인을 소환한다.


번쩍거리지 않지만 고상하게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은촛대는 백여 년도 전 어느 소박한 귀족집에서 은은한 불빛으로 식탁을 밝혔는지도 모른다. 오래된 유화에서 보듯 가족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로 하루를 마감하고 은촛대는 곁에서 조용히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식탁에 둘 정도의 큰 아이는 아니라 책상 한쪽에서 제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어디서였던지 한세대를 넘게 견뎌온 이 아이는 나에게로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품고 담아왔을까. 이야기가 있는 은촛대는 더 이상 무생물이 아니다. 빨리 초를 꽂고 하늘거리는 불빛아래서 은촛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전혀 없을 것 같은 공통점은 꿈을 그리게 한다는 점에서 통한다. 계수나무 이파리를 주워 맡으며 달을 쳐다보고 반달 노래를 흥얼거리며 어린 시절을 잠시 소환한 것이나, 흔들거리는 불빛아래 마주 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오래된 가족들의 따스한 이야기도 그려보게 하니 정겹지 않을 수 없다.


살다 보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도, 연관성도 없을 것 같은 일이 의외로 많음을 알 수 있. 바쁜 일상 속에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잠시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 본다면, 필요 없는 일도 어울리지 않는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군가가, 무언가가 나에게 일어났다면 그건 그때 필요했기 때문에 온 것이기도 하다.

받아들이든 흘러가게 두든 그것도 자유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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