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give and take.
아침 운동을 하려고 마당에 나와보니 데크와 의자들 위에 노란 가루들이 희끗희끗 앉았다. “간밤에 황사가 이렇게 많이 왔을 리는 없는데..." 자세히 보니 지난밤, 살짝 내리는 비에 송화 가루가 날린 것이었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박목월 선생님의 시가 생각나는 송홧가루 날리는 계절이 온 것이다. 창문 신경을 써야겠다. 송화가루 날리는 동안은 잘 닫아 둬야 한다. 창문을 열어두면 바람을 타고 노란 송화가루가 온 집안을 노랗게 물들일 수가 있다. 일 년 내내 말없이 푸르른 자태를 보여주던 소나무도 이제 제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브런치 글들을 읽어보면 마음에 와 닿는 좋은 글들을 쓰시는 분들이 많다. 그림 그리는 것, 글 쓰는 것, 악기 연주하는 것,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일들은 똑같은 일이다. 얼마만큼의 정성을 더하는가에 따라 심금을 울리는 주옥같은 글이 되고,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아름다운 연주가 되고, 보고 또 봐도 싫증 나지 않는 감성을 안기는 명화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필요한 것은 오직 노력인 것 같다. 인생에는 공짜가 없다.
중학교 1학년 때 영어 선생님 생각이 난다. 그분은 자신의 실내화 위에 이름까지 써놓는 독특한 분이셨다. 지금은 어디 사시는지 잘 모르지만, 미국 이민 간다는 말씀도 하셨으니, 아마 미국에 사시고 계시는지도 모르겠다. 목청과 인상도 특히 하셨기에 어느 선생님보다 가끔 기억이 나는 분이다. 첫 수업에 들어오셨을 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칠판에 써 놓으셨다 " LIFE IS GIVE AND TAKE" 그리고 읽으셨다. "라이프 이즈 기브 앤드 테이크" 함께 따라 읽게 하셨다. 영어를 모르던 아이들이 "영어 한글"을 목청껏 따라 읽던 추억이 문득 그립다.
나는 이 말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 인생은 주고받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인생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는 것이고, 받을 수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가끔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도 학기 처음이나 마지막엔 꼭 하는 말이다. 인생이란 긴 경주에서 "손을 먼저 내미는 것이 나를 더 크게 자라게 한다"라고 덧붙이며.. "라이프"는 "기브"가 먼저 되어야 "테이크"가 오는 것이다. "테이크 앤드 기브"가 아니다. 우리가 테이크에 너무 익숙해져 살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께 "테이크" 되어서, 부모가 되어서야 "기브"가 어떤 것인지를 비로소 몸으로 배우며 깨닫는 것 같다.
내 마음을 먼저 열어야 상대방이 들어와 숨 쉴 공간이 생기고 내가 먼저 주어야만 받을 수도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기브"에서 반드시 "테이크"할 기대는 가지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저 물 흐르듯이 그냥 주는 것이 좋다. 작년 가을에 올봄을 생각하며, 튤립 구근을 구석구석 심었다. 나의 "기브"에 튤립은 하나도 실망시키지 않고, 예쁜 꽃을 피워주었다. 올봄을 기대하며 심은 것이긴 하지만, 마당에 살아 있는 구근들도 많이 있었다. 봄을 위해서 보는 이를 위해서, 구근은 싹을 틔우고 자라난 것이다. 마당에 있는 초목들은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자신들의 난 바대로 역할을 할 뿐이다. 물론 나무나 꽃들이나 풀들이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좋은 과실을 주겠다"는 그런 결심을 단단히 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의 모든 것들의 "태어난 몫"을 나누기 위해 그들의 성정대로 할 뿐이다.
요즘 빛나고 있는 윤여정 선생님의 말이 생각난다. 브로드웨이로 가는 길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연습"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을 수 있다. 하지만 윤여정 선생님이 빛나는 사람이 된 순간, 그 말은 더 값진 말이 되고 마음에 와 닿는 것이다. 그분은 자기 인생의 많은 부분을 생업으로 혹은 열정 때문에 "연기"라는 대상에 대해 "기브" 했을 것이다. 그 "기브"의 결과로 지금의 "테이크"가 빛나게 된 것이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그분을 모르지만 그분의 "기브"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진정 멋진 사람은, 어떤 좌절이 와도 어떤 바람이 불어도 멈추지 않고 가는 사람이다. 그가 열정을 쏟는 것에 "기브"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자연은 빛나는 햇살과 더불어 살아갈 "하루"라는 새 날을 주며, 맑고 깨끗한 공기는 코로나 팬데믹 중에도 마음껏 숨을 쉬게 만들어 준다. 많은 것을 거저 받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인간만이 왜 먼저 "테이크"하고 싶어, "네가 하나 줬으니까 나도 너에게 하나 줄게"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주위에 살아있는 교훈을 주는 친구들, 나무들과 활짝 핀 꽃들 홀씨를 열심히 날리고 있는 민들레 꽃까지도 주기 위해 태어난 고마운 자연 속에서, 오늘 나도 나에게 주어진 이 하루를 작은 미소와 함께 따뜻한 차 한잔 먼저 내미는 좋은 날로 만들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