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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May 15. 2021

기념일

2021.05.14. 금요일



어제는 여름 날씨만큼 더웠다. 나는 이웃들과 조금 떨어진 화원에 가서 백 당화와 주홍색이 예쁜 (이제는 졌다만) 철쭉 한그루를 사서 오후에 심었다. 5월임에도 땀 때문에 늘어질 정도로 더운 날씨였다. 오늘 아침은 고맙게도 햇살이 밝게 비친다. 내일부터 다음 주 월요일까지 비 온다니, 이른 더위는 좀 물러 갈지 몰라도 봄의 정취를 느낄 날이 적어 아쉽긴 하다. 그래도 비가 와야 한다. 바람 부는 악비가 아니라, 솔솔 내리는 약비가 오바래본다.


"까똑" 지인이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다. 무려 8장이다. "감사합니다". "로즈데이(rose day) 당신은 장미처럼 얼굴만 봐도, 즐거운 생각만 해도 행복한 내겐 그런 사람입니다." 지인이 물론 직접 써서 보낸 글도 아니고 그런 글을 보낼 사이도 아니다. 인쇄된 문자에 불과하지만,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꽃을 받아서 싫을 사람 있겠는가... 오늘은 로즈데이인가 보다


오월은 기념일이 많은 달이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오래전에는 어머니 날이었지만), 스승의 날이 연이어 있다. 석가탄신일도 오월이다. 가만 보니 5월은 감사의 달이다. 여러 가지 기념일을 두는 의미는 무엇일까. 있으면 좋은 일, 이렇게 해야 할 일, 기억해야 할 일들, 좋게 아름답게 이어져 가자는 뜻에서 기념일도 많아진 것일까. 아니면 바쁘고 힘든 일상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일이기에 날을 만들어서라도 각인시키려는 것인가...  5월의 기념일들은 아무래도 후자에 속할 것 같다.


어린아이들을 기억하자는 방정환 선생님의 말씀은 힘들었던 그 시기에 숨구멍을 틔어준 고마운 일이었다. 얼마나 암울했던 시기였던가. 희망 없이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하루라도 기쁨 주고 격려해줘야 하는 공식적인 날이 필요했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었던가. 그 날을 세운 고마움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 같았으면 일 년 열두 달이 아이들 위주니, 굳이 기념일을 세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만, 아이였던 우리들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줬던 "어린이날"이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간간히 들리는 가슴 아픈 소식이 다시는 들리지 않고 "매일이 어린이 날" 이길 바래본다.


"어버이날" 부모님의, 특히 어머니의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평생을 가족과 자녀들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시고 살아오셨던가. 사랑할 시간밖에 못 가지신 분처럼 오로지 매 순간을 자식들을 위해 살아오신 분이 아닌가.  어머니는 이 나라를 일군, 위대한 분이시다. 아버님들의 삶도 마찬가지였지만, 소리를 낼 수 없었던 어머니들은 외로웠기에 더 힘든 삶을 보내셨던 것이다. 


무엇보다 서글픈 일은,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어도 달아드릴 어머니가 안계심이다. 세월이 변하고 시간이 흘러도 "태어난 자식"으로써 살아가는 모두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반중 조홍 감이 고와도 보이 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 그를 설워 하노라" 이 시조를 언제 외웠는진 모르지만, 유난히도 감을 좋아하셨던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언제나 되새겨지는 글이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이상하게도 "김영란법"이 시행된 후로 스승의 날은 예전과는 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요새 선생님 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스승에 대한 공경의 도가 땅에 떨어졌다는 얘기기도 하다. 어렸을 때 나의 꿈 중의 하나는 선생이 되는 것이었다. 단순하고 간단한 이유였다. 먹고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도와주고 이끌어 주면서 내 삶도 영위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어린 나이에 현실적인 생각을 했는진 모르겠으나 "직업으로써의 스승"도 존경했던 것 같다. 


세상의  다양한 직업,  혹은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하는 직업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불행을 겪게 해주는 직업도 있다.  그런 것에 비해서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 선생님을 하는 분들은 존경과 우도 받아야 되겠지만,  한편으론 사회에 많은 감사도 드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바쳐 충성하며 일했던 직장에서 그만두고 나오면 회한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한다. 비유가 잘 맞진 않을지 몰라도 선생님은 은퇴하셔도 존경과 영예를 얻는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얻을 수 있는 귀한 복이 아닐까... 자신의 직업으로 먹고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덕을 끼칠 수 있는 것을 갖췄다는 것은 혼자만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식품일을 하지만, 작은 자부심을 가지고 감사하며 살아왔다. 왜냐면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사람의 생명을 연명하는 데 꼭 필요한 양식을 제공하는 일이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잊혀가는 조상님들도 덕을 많이 쌓은 분들이 아닐까 싶다.  결국 무엇을 해도 "감사함을 잊지 말라"는 말씀의 5월이다.  5월은 너무 가까이 있기에 잊기 쉬운 것들을, 잊지 말고 품고 살라는 의미에서 많은 기념일들로 안겨지는 것 같다. 꽃이 떨어지고, 시들어도 씨앗 안에 봄이 살아 있는 것처럼 피어난 의미를 잊지 말라는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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