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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긴 여정의 끝, 시험관 임신 졸업의 날

끝이 없을 것 같은 터널을 뚫고 한 줄기 빛과 만나다.

by 출근하는 누군가

24년 4월 처음으로 시험관 시술을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이만 믿고 1차에 될 줄 알았는데 신선 1차, 동결 4차 만에 어렵게 소중한 아이를 품게 되었다. 매주 초음파를 볼 때마다 쑥쑥 커가는 아기를 보며 힘을 내 주사를 맞았고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난임병원 졸업을 10주 2일에 하게 되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시험관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마음대로 아플 수도, 휴가를 계획할 수도 없었다. 오로지 나의 1년간의 연차는 난임병원 진료를 위해 사용되었다. 하필이면 올해가 진급케이스라 진급도 놓치기 싫어 업무도 풀로 받아서 진행했고 영어시험 통과를 위해 난임병원 대기 시간마다 책을 펼쳐놓고 공부했다.


그렇게 치열한 1년을 보내고 나는 진급도, 아이도 모두 얻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시험관 시술 자체는 오롯이 나의 몫이었지만, 그래도 남편의 든든한 지지가 없었다면 4차까지 오지 못했을 것 같다. 나의 지난 글을 보면 동결 2차에 실패하고 멘탈이 무너져 어둠 속 어딘가로 깊게 빠져버린 기록이 있다. 그 어둠 속에서 다시 한 발을 내딛을 수 있게 용기를 주고 뒤에서 받쳐준 게 남편이다.


내 남편은 지금도 나에게 작은 거라도 해주고 싶다며 애쓰고 있다. 서툰 칼질로 음식을 해주기도, 영하 10도 날씨에 변덕스러운 나의 입맛을 맞춰주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가기도 한다. 분리수거 역시 모두 남편 담당이 되어버렸다.


결혼 후 남편이 가족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30년 넘게 남으로 살다가 갑자기 서류로 묶어버린 가족이란 관계가 가끔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우리는 시험관이라는 큰 여정을 함께하며 더 단단해지고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 새로운 가족도 만날 수 있었다.


이 글은 나의 시험관 기록의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앞으로 나의 목표는 하나다. 7월까지 아기를 최선을 다해 품어 건강하게 출산하는 것이다. 주사를 끊고 걱정이 앞서지만, 우리 따봉이는 강하니까! 무럭무럭 자라줄 것이라고 믿는다.


시험관을 준비하며 내 글을 보고 있을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임신에 연달아 실패했을 때 위로가 되었던 말인데,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에 우리는 누구나 아기를 만날 수 있다. 그런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다 보면 끝이 없을 것 같은 터널을 뚫고 한 줄기 빛과 만나게 될 것이다.


힘든 결정과 과정을 시작한 대한민국의 모든 난임부부를 응원하며, 나의 시험관 기록을 마무리한다.

내 자신 너무 고생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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