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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라 Oct 05. 2020

예상치 못한 계획 임신

내가 임신했다고?

임신은 계획한 시기에 예상치 못하게 찾아왔다.


우스갯소리로 내년 1월에 아이를 출산하고 싶다는 소리를 하고 다녔으나, 맘대로 되지 않는 임신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터라 기대는 전혀 없었다. 어찌나 기대가 없었냐면, 그렇게 공공연연하게 계획이라고 떠들고 다닌 게 무색하게도 엽산도 먹지 않았고 배란테스트기도 사지 않았으며, 집들이를 명분으로 평소 마시지도 않던 술 약속을 매주 잡았다.


뿐만 아니라, (임신 초기에 금기시되는) 계단 오르기를 2달째 하던 중이었고, 친구들과 막 단톡방에서 식단을 공유하며 다이어트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그래서 계단을 오르며 유독 숨이 차도 운동 부족으로 생각했고, 저녁마다 허기를 참을 수 없을 때에도 단순히 간식을 줄여서라고 생각했다.


생리가 늦어져 별생각 없이 해봤던 임테기에서 진한 2줄이 나오자, 벙찔 수밖에 없었다.


이게 진짜일까?라는 의심과 함께, 절망감이 들지 않아 신기했다. 결혼 후에도 임신에 대한 불안감이 커서 피임을 안 하면 다음 생리일까지 걱정하며 지낸게 얼마 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2줄을 보며 진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 심경의 변화가 의아하면서도 다행이었다. 임신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끝났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자고 있는 남편에게 임테기를 보여준 다음, 셔틀버스를 놓치기로 결심하고 한 시간을 남편과 함께 누워있었다. 우리 둘은 아이가 생겼다는 설렘과, 임테기 오류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휩싸여 한참을 서로 껴안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했던 계단 오르기를 건너뛰고,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 내 모든 일상을 공유하는 여동생에게 이야기한 다음, 한참을 고민하다 식단을 공유하던 방에 임신 사실을 알렸다. 다들 축하해주며 당장 다이어트를 그만 두라 하여 속으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임신 중이던 다른 선배에게 임테기 2줄을 보았다고 이야기하고, 선배의 조언에 따라 큰 병원을 예약했다. 아직 너무 초기이니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말을 아끼자고 다짐했다.


그 주 주말에 당장 병원을 찾아갔다. 운전하겠다는 나를 말리고 차를 모는 남편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질초음파를 보기 전까지 꽤나 오랜 시간을 대기했음에도 남편이랑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질초음파로 아기집과 그 안의 난황을 확인했지만 의사의 말은 다소 모호했다. 대체적으로 별 문제가 없다는 소견이었지만 벌써 기뻐해도 될지 알 수 없었다. 임신확인증을 받아드는 순간까지도 어안이 벙벙했다. 진짜 임신이 맞다고? 내가 이 임신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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