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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라 Oct 05. 2020

유산과 낙태, 그 사이 어딘가

원하지 않았고 의도치 않았던

임신 확인증을 받은 후, 잊고 있던 허기가 몰려와 전날 점찍어둔 라멘집으로 향했다. 음식을 기다리면서, 남편은 확인증까지 받았으니 부모님께 전화하는 게 어떻냐고 물었다. 어찌 될지 모르니 9주 차까지는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말자고 이야기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막상 확인증을 보니 입이 근질거리는 모양이었다. 


휴대폰을 만지며 어찌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이 임신을 온전히 기뻐해도 되는 건지 자신이 없었다. 초기 유산이 흔하다는 건 상식이었고, 나는 심지어 유산 경험도 한 번 있었다. 뱃속에 애가 들어섰다 사라진다는 게 뭔지 알아 알리기가 더 두려웠다.


당시는 심지어 결혼을 준비하던 시기, 즉 결혼 전이었다. 생리 날짜가 불규칙하기는 하지만 2주나 늦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아 설마 하는 마음에 산부인과를 갔다.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기에 혹시라도 2줄이 그어진 임테기를 엄마가 발견할까 봐 임테기는 시도도 해보지 않았다.


산부인과에서 해본 임테기에서 2줄이 나와 질초음파를 해보니 아기집이 보였다. 임신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혼전 임신은 혼수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를 위로하지는 못했다. 곧 결혼할 사이였음에도 엄청난 죄책감이 휘몰아쳤다. 이 모든 게 거짓말이길 바랐다. 믿을 수 없었다. 착착 준비되던 결혼 준비와 앳된 2년 차 커리어, 모범적인 나의 삶과 평판에 적신호가 켜진 거 같았다. 삐용삐용.


기운이 없어 멀리도 못 가고 병원 앞 카페에 앉아 남자 친구(현 남편) 함께 음료를 시켰다. 내가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말하자 남자 친구는 적잖이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어차피 결혼도 할 거였고, 시기만 조금 당기면 된다고, 본인이 잘하겠다며 나를 설득했다. 함께 만든 이 생명체에 책임을 지려는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고, 남자 친구가 말만 이럴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알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참 쉽게 이야기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임신이, 아니 혼전임신이 우리 둘에게 완전히 다른 무게감으로 와 닿는다는 걸 그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 번쯤은 낳는 걸 고민했을 법도 한데, 당시의 나는 참으로 완고했다. 남자 친구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애당초 혼전임신은 사랑한다고 견딜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남들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하는 거 같아 신경이 쓰이는 데, 속도위반 딱지가 붙는다니 상상만 해도 싫었다. 이제 일도 겨우 손에 익은 참이어서 쉬고 싶지 않았다. 아, 물론 엄마가 될 마음의 준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는 임신 중단이 법적으로 금지되어있던 시기였기에, 나는 각종 임신 중단 방법을 찾아보며 죄악감 시달렸고, 때때로 화가 나기도 했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결정할 수가 없었다. 선택지가 없었다. 혼전임신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견딜 수 없어서, 엄마가 될 자신이 없어서 임신 중단을 찾아봤는데, 이건 불법 시술이라 하게 되면 범법자가 될 판이었다. 사실 그보다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 불법이다보니 제대로 된 의료시설이나 법적 장치도 전혀 마련되지 않아, 여차해서 의료 사고라도 나면 대응도 불가능했다. 아이를 낳아도 죄, 지워도 죄였고, 이러나저러나 희생되는 건 내 몸뚱이였다.


죄책감으로 얼룩진  다음 주에 다시 산부인과를 찾았다. 아이가 내 마음을 읽은 걸까? 아기집은 있지만 태아가 없었다. 고사난자였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난 낙태가 아니라 유산을 한 거였고,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정당한 소파술을 안전하게 받을 수 있었다. 수술실에서 깨어나 버둥거리는 나를 남자 친구가 꼭 잡고 있었다.


이상했다. 분명히 나는 이 아기가 갖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임신 중단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여전히 죄인이었다. 혼전임신인 게 죄스러워 엄마한테 말할 수 없었고, 아이를 낳고 싶어 한 남자 친구에게도 미안했다. 아이를 지울 생각을 했었어서,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게 내 탓인 거 같아서 또 한 번 죄책감을 느꼈다. 앞으로 아이를 갖는데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싶은 걱정도 들었다. 고사난자의 원인이 나나 남편이면 어쩌지.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어쩌지.


원하지 않던 임신은, 의도치 않게 유산이 되었다는 이유로 또 한 번 나를 괴롭게 했다.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잃을 걱정부터 한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저번처럼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아이가 생겼다는 기쁨만큼 언제 아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따라붙었다. 혹시라도 유산할 경우 부모님의 실망감까지 견딜 자신은 더욱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남편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엄마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한테는 임신 초기라 어찌 될지 모른다고 덤덤히 덧붙이고서, 아빠한테 전화하면서는 결국 눈물을 쏟았다. 아이를 갖는다는 건 이처럼 기쁘고도 무섭고, 설레면서도 걱정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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