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문턱, 이십 년 전 대구를 만나다

by 이래춘

가을 문턱에 대구로 가는 고속 열차에 몸을 실었다. 옛 동료들을 만나러 간다. 내 인생의 기찻길에서 잊지 못할 정거장인 대구는 남달리 정이 가는 도시다. 타지에서 두 번째로 오래 살았고, 고향과 가깝고, 둘째 아이가 태어난 곳이다. 오래전 추억을 찾는 마음을 아는지 기차가 빠르게 달린다. 어느새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역을 빠져나와, 수성못까지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동대구로를 따라 걸었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을 역으로 마중 나가서 이 길로 데리고 왔다. 형제들이, 처가 식구들이, 친구들이 이 길을 지나갔다. 오늘은 내가 손님이 되어 걷는다.

방송국 맞은편에 자동차 전시장이 보였다. 어린 아들은 '자동차 슈퍼'라 했다. 새 차를 사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녔는데 이곳에 들러 상담받던 기억이 났다. 그때 구입한 차는 오랫동안 우리 가족의 발이 되어 주었다. 너무 낡아 중고로도 팔 수 없어 폐차시키기로 했다. 견인되는 모습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보여 마음이 아팠다.


제14호 태풍 '찬투(CHANTHU)'가 북상 중이라 바람이 제법 거셌다. 찬투는 캄보디아 말로 꽃의 한 종류라고 한다. 꽃 같은 시절을 함께 보냈던 그들을 만나러 가고 있다. 길목마다 찾아낸 추억을 회상하며 느긋하게 걸었더니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하나 둘 식당에 들어서고 술잔이 돌았다. 흰머리, 주름살, 볼록 나온 배. 세월의 흔적을 그들에게서 보았다.


술잔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이십 년 전으로 돌아갔다. 기억을 짜 맞추니 많은 일화가 나왔다. 처가살이하는 직원 집들이에서 장인의 비싼 양주 먹었던 일. 맞벌이하는 직원 아내가 팀원들을 초대했다. 샤부샤부라 하면서 '끓는 물과 소고기 한 접시'만 달랑 내놓아 당황하며 마셨던 소주. 부서가 줄어들어 직원들이 뿔뿔이 헤어지던 날의 마지막 회식 등 모두 술 이야기다. 그땐 왜 그리도 술을 많이 마셨는지, IMF 외환위기 직후라 삶이 모두 녹록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내가 출근하는 나를 따라나섰다. ‘매일 술자리에 불러낸다는 상사를 만나서 따지겠다’고 한다. 아차 싶었다. 높은 사람과 술자리라고 하면 아내가 쉽게 이해해 줘서 상사 핑계를 댔었는데, 그날부터 술자리를 줄이고 솔직하게 양해를 구했다. 그래도 가끔은 거래처 사장을 돌아가면서 핑계를 댔다. 끝이 없는 옛날 얘기로 술자리가 길어져 취기가 제법 돌았다. 가까운 숙소를 찾아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고마운 시간을 내준 일행들에게 감사 인사를 카톡으로 보냈다. 숙소 가까이에 범어 성당이 있어 찾아갔다. 성당은 황토색 벽돌로 지어진 4층 건물이다. 검은색 지붕 밑에 아치형 하얀 대리석 창문이 눈길을 끌었다. 고풍스러운 유럽의 성당을 보는 듯하다. 성당 출입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마침 미사가 열리고 있어 성전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잠깐 성당 구경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나이가 드니 성당이나 사찰을 찾으면 고요한 마음이 든다. ​ 성당 정문으로 나가는 길 왼편으로 야트막한 언덕이 있다. 성모 마리아 동상이 오는 이들을 반기는 듯 두 손을 활짝 펴고 서 있다. 벤치에 앉아 하늘의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한없이 자애로운 표정이다. 세상 근심이 사라진다. ​


성당을 나오니 배고픔이 몰려왔다. 바로 떠오른 식당이 있어 앞산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대구에는 산 이름이 '앞산'인 산이 있다. 소박한 이름과 달리 한 해 천만 명이 찾는 대구를 대표하는 명산이다. 앞산 밑에 선지 국밥으로 유명한 식당이 있다. 식당까지 가는 교통편이 있지만, 골목 구경하고 싶어 안지랑역에서 내렸다. 대구는 왕건과 견훤이 큰 싸움을 벌였던 곳이라 이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안지랑이'라는 말은 '왕 지렁이'에서 나왔는데 지렁이의 정기를 타고났다는 견훤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 안지랑이 골목에는 50여 곳 곱창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안지랑이 곱창골목은 전국 5대 음식테마 거리,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될 정도로 전국적으로 인기가 높다. 그 시절 우리는 막창을 즐겨 먹었다. 막창구이는 소나 돼지의 막창 부위를 불로 구워 먹는데 바삭하고 쫄깃한 맛이 일품이었다. 앞산을 향해 올라가는 골목에는 아기자기한 작은 카페들이 많이 보였다. 저기 어디쯤에서, 친구가 소개해 준 여대생과 가을 축제를 즐기고 뒤풀이했던 기억이 났다. 그녀도 어디선가 추억 여행을 하고 있을까?


점심이 지난 시간이라 식당은 한가했다.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크게 들려왔다. 주방 가마솥에는 선짓국이 벌겋게 끓고 있었다. 주문을 하니 양은 쟁반에 담긴 음식이 바로 나왔다. 양념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을 넣고 국물을 한 술 떴다. 얼큰하니 속이 풀린다. 선지는 영양소가 풍부하여 건강에 좋고 숙취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예전에 어머니가 이곳 선짓국을 드시다 마을 사람들이 생각난다 했다. 선짓국을 차에 싣고 가서 대접했던 일이 떠올랐다. 동네 이장이 마을 스피커로 식사 대접한다고 먼저 알리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따로 초대를 했다. 식사하고 나가시는 어른들 손에 우산 하나씩 들려 드리니 햇볕에 타서 까만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중리 체육공원에 꽃무릇이 한창이라길래 가보았다. 대구시에서 산업단지와 주거지 사이 경계지역을 훌륭한 산책로로 꾸며 놓았다. 철마다 예쁜 꽃을 심어 시민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고 한다. 꽃무릇은 가을에 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석산(石蒜)이라고도 하는데 돌 틈에서 나오는 마늘종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공원에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나무 밑에는 꽃무릇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멀리서 보니 빨간 주단을 펼쳐 놓은 듯하다. 고고하게 혼자 피기도 하고 여럿이 어울려 피어 있어 어디로 눈길을 줄지 모를 정도이다.


꽃무릇 구경을 끝으로 대구 여행을 마쳤다. 동대구역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미국 그림 작가 닥터 무스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순간의 소중함은 그것이 추억이 되기 전까지 절대 알 수 없다"라고 했다. 오래전 대구의 삶이 팍팍하고 고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간직하고픈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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