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백제 무왕의 천년 사랑을 찾아서

by 이래춘

인터넷으로 뉴스를 읽다가 문득 예전 기사가 떠올랐다. 국립 익산 박물관의 개관에 맞추어, 백제 무왕의 진품 목관을 전시한다는 소식이었다. 무왕의 목관이 세상에 모습을 보이는 건 백여 년 만이다. 백제 무왕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어 익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어린 시절 무왕, 서동이 태어나서 자란 곳인 '서동 생가터'부터 들렀다. 소박한 풍경 속에 빨간 하트 모양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가 생각났다. ​서동은 마를 캐서 장에 내다 팔며 홀어머니와 살았다. 가진 것 없는 서동이 공주와 결혼하러 신라로 떠났다. 서동요를 시중에 퍼트리자, 이를 들은 신라 왕은 대노했다. 곱게 키운 공주가 비천한 신분의 서동과 연분이 났다고 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 것이다. 왕의 노여움을 산 공주는 대궐에서 쫓겨나고, 서동이 공주를 달래어 부부의 연을 맺었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장인은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가난한 산골 출신인데다가 홀어머니, 거기에 시누이가 다섯이나 되니 세상에 둘도 없는 막내딸의 미래를 염려한 것이다. 내가 장인이어도 반대했을 법했다. 결혼하고 두 해가 지나서야 아내는 장인의 반대를 조심스레 들려줬다. 마음고생한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서동 생가터 바로 옆에 큰 연못이 있다. 서동의 어머니가 연못의 용과 사랑을 나누고 서동을 낳았다 한다. 연못에 홍련이 보였다. 천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선화공주를 향한 서동의 사랑이 연분홍 꽃잎 되어 활짝 피어 있는 듯했다.


무왕은 자신이 태어난 서동 생가터 인근 쌍릉에 묻혔다. 쌍릉은 대왕릉과 소왕릉을 말하며 무왕과 선화공주의 능으로 추정하고 있다. 쌍릉 입구에 분홍색 배롱나무꽃이 한창이다. 두 능은 크기만 다를 뿐 단출하게 봉분만 꾸며져 있어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하늘 높게 서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마치 왕릉을 수호하는 호위무사들인 듯하여 마음이 든든해졌다. 송림 사이로 난 한적한 오솔길로 쌍릉이 연결되어 있다. 무왕과 선화공주는 밤마다 이 길을 거닐며 사랑을 속삭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엄격한 장인은 통금시간을 10시로 정해 놓고 아내의 귀가를 점검했다. 처음에야 부랴부랴 시간을 맞췄지만 젊은 청춘들에게는 무리였다. 점차 귀가 시간이 늦어지자 통금시간이 밤 12시로 바뀌었다. 어느 날 아내를 데려다주고 집에 가는데 전철 막차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헐레벌떡 뛰어 갔지만 아니나 다를까, 눈앞에서 전철을 놓쳤다. 주머니를 뒤지니 택시비가 나왔다. 혹시나 막차를 놓칠까 봐 염려한 아내가 건네준 돈이었다.


백제 중흥을 위해 무왕이 건설한 '익산 왕궁'이 있던 자리, 왕궁리 유적으로 발길을 옮겼다. 미륵사지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무왕의 원대한 꿈은 백제의 멸망과 함께 사라지고, 왕궁은 허허벌판이 되었다. 빈 들판에 국보 289호 '왕궁리 오층 석탑'이 홀로 서 있다. 그 옛날 화려했을 고대 왕국의 모습을 그려본다.


왕궁터 옆으로 국도 1호선이 지나고 있다. 차로 이십 분 거리에 전주가 있다. 아내와 사귀고 있을 때 전주 출장을 갔다. 당시 아내는 혼기가 차서 맞선 자리가 많이 들어왔다. 거기다가 장인이 남자 친구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니, 아내 마음이 숯검정처럼 타들어 갔을 것이다. 나라도 아내 마음을 살펴야 했는데, 가진 것이 없으니 쉽게 결혼을 꿈꾸기가 어려웠다.


​전주에서 일을 마치고 다음 출장지로 가는 마지막 시외버스를 탔다. 버스는 내 마음처럼 흔들리며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빈 좌석이 많아 더욱 쓸쓸했다. mp3를 켰다. 몇 곡 안되는 애청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음악에 취하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대 품에서 잠들었으면~" 어느 순간, 가사가 또렷하게 들렸다. 갑자기 마음이 요동친다. 아내가 보고 싶다. 매일 품에서 잠들고 싶은 사람, 아내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았다. 결혼을 마음 먹었다.


​왕궁리 유적을 빠져나오자 길가에 '입석 석불'이라는 표지판이 보여 찾아갔다. 200m 가량 떨어져 마주 보며 남녀 석불이 서 있다. 석불에는 아름답고 슬픈 전설이 전해 온다. 석불 사이로 옥룡천이 흘러 평상시에는 만나지 못하고, 냇물이 꽁꽁 얼어붙는 섣달 그믐밤이 되어야 둘이 만날 수 있다. 만남도 잠깐, 새벽닭이 울면 일 년 후를 기약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한다. 석불은 일 년에 한 번 만나는데도 그 사랑 변치 않고 천년을 이어왔다.


결혼 승낙을 받으러 장인을 만났다. 장인의 반대를 몰랐기에 당당하게 소신껏 말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받으며 대학 졸업했고, 고생하려고 일부러 힘든 아르바이트를 한 얘기도 했다. 장인은 "고놈 사막에서도 살아남겠어"라는 말을 하곤 더 이상 반대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미륵사지에도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숨결이 살아 있다. 어느 날, 용화산 아래 연못에서 나타난 미륵삼존을 본 선화공주가 그 자리에 절을 세우자고 간청을 하여, 무왕이 연못을 메우고 절을 지었다. 미륵사는 법당과 탑이 세 군데 있을 만큼 규모가 컸는데 현재는 가람이 전부 사라지고 광활한 벌판에 당간지주와 석탑만 남아 있다. 미륵사지 석탑은 국보 제11호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이다. 미륵사가 웅장한 옛 모습 그대로 하루빨리 복원되길 바랐다.


​미륵사지를 구경하고 나오면 국립 익산 박물관으로 연결된다. 박물관은 세 개의 상설전시실에 삼천여 점의 유물을 전시해놓았는데 제일 눈길을 끈 것은 ‘쌍릉 대왕릉 목관’이었다. 무왕이 잠들어 있던 목관이다. 목관은 고급 목재인 금송으로 만들어졌다. 많은 부분이 부식되어 사라졌지만, 천삼백 년 전 무왕이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았다.


익산은 백제 무왕의 도시다. 무왕이 나서 자라고 묻혀 있는 곳이다. 무왕은, 꺼져가는 나라의 촛불에 든든한 심지가 되어 줄 미륵사와 왕궁을 지었고, 선화공주와 사랑 이야기를 곳곳에 심어 놓았다. 꽃들이 활짝 피는 오월이면 익산에서 '서동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무왕의 천년 사랑이 꽃피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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