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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대봉이 오빠를 이겼어

by 이래춘

어릴 적, 산골은 겨울이 길었다. 겨울밤은 더 길었다. 아버지는 겨울이 오면 윗목에 고구마 탑을 쌓았다. 수수대를 엮어 발을 만들어 둥글게 세웠다. 그 안에 고구마를 흙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이 쌓았다. 딱히 군것질거리가 없던 시절, 고구마는 훌륭한 간식이자 야식거리가 되었다. 고구마를 쪄서 먹고 구워서 먹고 밥에 넣어서 먹고 생으로도 먹었다. 밤에 눈이 오면, 눈 속에 고구마를 넣었다가 다음날 아침 꽁꽁 언 고구마를 먹었다. 눈 속에서 탱탱 언 고구마는 사탕보다 더 달았다.

처가에 다녀온 아내가 집에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짐을 나르려고 내려갔다. 나를 만난 아내가 흥분하며 말했다.
"대봉이 오빠를 이겼어"

세상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과 다르다. 종교와 같이 절대적이다. 특히 장모님의 큰아들에 대한 사랑은 맹목적이다. 모든 의사결정에서 1순위가 큰아들이고 큰아들의 생각과 행동은 무조건 옳았다. 맛난 것도 큰아들에게 양보했다.​

처가에 간 아내에게 장모님께서 대봉 홍시가 먹고 싶다고 하셔서 마트에서 한 박스를 구입해 드렸다고 한다. 드시기 편하게 냉장고에 넣고 있는 아내에게 "오빠가 왔다 갔다 하면서 홍시를 먹으니 창고 구석에 숨겨 놓아라"라고 하셨다고 한다.

장모님에게는 대봉 홍시가 큰아들보다 소중했다. 대봉 홍시가 종교를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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