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살면서 후회되는 게 몇 가지 있다. 잘못된 음주 습관, 스무 살에 시작한 흡연,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히 한 책 읽기, 형편없는 어학실력 등...
몸짱 의사로 유명한 김원곤 교수는 정년퇴직하고 4년간 4개국에서 4개 외국어 연수를 다녀왔다. 연수 기간에 팬데믹이 왔으나 뜨거운 열정으로 헤쳐나갔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을 멋지게 이루고 돌아온 그가 부러웠다. 그리고 나도 작은 도전을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구민대학에서 영어회화 공부를 시작했다. 살면서 학교 밖에서 영어를 배우기는 처음이다. 수업 전에는 강사가 영어로 말하기를 시킬까 봐, 다른 수강생과 영어실력이 너무 차이 날까 봐 등등 여러 가지로 걱정이 되었는데 막상 수업을 듣고 나니 너무 재미있었다. 왜 이제야 시작했을까 후회할 정도이다. 내 얘기를 들은 지인도 같이 영어 수업을 받겠다고 했다.
어제 아침에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예술의전당에서 발레 갈라 공연을 보았다. 공연이 끝나니 비가 그쳤다. 비싼 장우산을 공연장 벤치에 놓고 왔다. 집에 와서야 알았다. 아쉽고 아까웠지만 우산과 인연이 여기까지 인가 보다고 애써 마음을 달랬다. 오후에 영어수업 들으려 나서는데 안경이 안 보인다. 온 집안을 다 뒤져도 보이지 않는다. 공연장 벤치에서 잠깐 벗었는데 다시 쓴 기억이 없다. 다초점 렌즈라 제법 비싼 편인데다 맞춘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속상한 마음이 컸다. 우산에다가 안경까지 잃어버리니 바보가 된 것 같다. 짜증이 밀려왔다.
어쩔 수 없이 예전 안경을 쓰고 집을 나섰다. 강의실에 영어수업을 같이 듣기로 한 지인이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했다. 세상 편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업 얘기를 하니 놀라면서 깜빡 잊었다고 했다. 아침까지 기억하고 있었다면서 자신의 건망증을 안타까워했다. 장우산과 안경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만 그런 거 아니구나. 갑자기 위로가 되었다.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식탁에 안경이 놓여 있다. 아내 말로는 안경이 안방 화장실에 있었다고 한다. 이번엔 위로가 아니라 기쁨이 몰려왔다. 건망증이 나를 울리기도 하고 웃게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