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꽃과 단풍이 곱다. 사진 찍기 좋은 계절이다. 아내는 사진 동호회 사람들과 아침 일찍 강원도로 떠났다. 출사지는 깊은 산속에 있는 은행나무숲이다. 사유지라서 평소에는 드나들 수가 없고 단풍이 한창인 요즘에만 출입이 가능하다. 단풍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입장료를 받으면 수입이 어마어마할 텐데 무료로 개방을 하는 주인의 마음이 곱게 물든 단풍만큼이나 아름다워 보인다.
아내는 어느 일간지 교육센터에서 사진 찍는 법을 배웠다. 3개월 수업이 끝나고 사진 동호회 여러 곳에 가입을 하더니 본격적으로 출사를 다녔다. 전국의 풍경 좋은 곳은 밤이든 새벽이든 카메라 가방을 들고 떠났다.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전적으로 응원을 했다.
그런데 점차 카메라 성능을 탓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카메라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 원하는 기종은 가격이 천만 원 가까이해서 구입을 주저하고 있었다. "내가 사줄게. 인터넷에서 더 싸게 살 수 있으니 알아보겠다"라고 큰 소리를 쳤다. 과소비할까 봐 신용카드도 안 쓰고 체크카드 쓰는 아내가 천만 원짜리 카메라를 선뜻 살 리가 없기에 먼저 사주겠다고 말한 거였다.
시간이 흘러 몇 달이 지났다. 기다리다가 지쳤는지 카메라에 대해 말이 없던 아내가 "동호회 회원 하나가 개인 사정으로 활동을 못 하게 되어 오백만 원에 그 기종을 팔고 있다"라고 했다. 구입하고 며칠 지나지 않은 새거나 마찬가지라면서 흥분하며 말했다.
비상금 통장을 털었다. 은행에서 만 원짜리로 오백만 원을 찾았다. 퇴근하면서 아내에게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자고 했다. 집 도착시간에 맞추어 공원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집에 오니 아내가 없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몸 컨디션이 안 좋아 공원으로 안 가고 집으로 왔다고 했다. 아내는 저녁을 같이 하자며 바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봉투에서 돈을 꺼냈다. 거실 입구에 현금 오백만 원으로 하트를 만들었다. 집안에 불을 끄고 양초를 켰다. 잠시 후 그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현금 하트를 보고 좋아했다. 단풍보다 더 아름다운 얼굴로 환호성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