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by 노거팽

지은이가 9개월 하고도 며칠을 더 자랐다. 산부인과에서 또 산후조리원에서 보낸 날들이 어제 같은데, 벌써 집에서 지은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익숙해졌다. 얼떨떨했던 마음이 가라앉고 차츰 아이와 소통하는 방식이 다양해진다. 이 아이의 존재가 내 삶에서 점점 커져 가려나.


사람은 자라며 스스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또 그 실존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란 바로 그 존재감을 주고받는 것 아닐까. 우리가 서로 존재하는 이유를 사랑으로 찾지 못하면 다른 무엇으로 찾을 수 있겠는가.


며칠 전 '유전자 지배 사회'라는 책을 봤다. 정확히는 아침운동을 하며 이북 어플의 AI보이스로 들었는데, 들었다고 해야 맞으려나. 여하튼,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전개와 신뢰를 주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 삶의 많은 부분을 '유전자의 관점에서 유리한 선택'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이 책의 논리에 따르면 좁은 의미의 사랑도 또 나름 넓은 의미의 사랑도 같은 관점으로 설명된다. 다만 유전자에 따른 자연스러운 선택이 의미 있는 삶인가에 대해서 작가는 비판적이었다.


아내와 일상을 함께하고, 또 많은 선택과 그 결과를 함께한다. 서로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으며 또 받고 있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라는 시가 참 의미 있게 읽어진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수학을 공부하면 '존재'의 의미는 결국 '관계'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맺은 모든 관계로부터 그 사람은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또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존재감을 나누는 것이겠다. 내 생각에는 그런 관계들 중 특히 서로를 통해 각자 자신의 존재를 크게 확인하는 것이 사랑인 것 같다. 사랑받기를 원하면 먼저 사랑하라고 했던가. 즐거운 편지에서 이야기하는 한없이 잇닿은 기다림은 정말 기다림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그 문장은 사랑 = 기다림 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인데,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지은이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눈이 내리고 또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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