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원했던 건 뭘까?
아기가 울어댄다, 아주 시끄럽게. 목청도 좋다. 이렇게 큰 소리로 울어댈 때 보면 아기가 맞나 싶다. 어른보다 더 크게 울어대는 것 같다. 아무리 내 아이지만 이렇게 남들 다 잘 시간에 큰 소리로 울어대면 너무나 난처하고 힘들다. 솔직히 말하면 짜증 날 때도 많다. 열차 안에는 다행히 딱히 핀잔을 주거나 싫은 티를 내는 사람은 없지만 아무래도 민폐인 것 같아 남들 눈치가 보인다. 이런 상황이 되면, 그러니까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큰 소리로 울어대는 그 순간이 되면 뭔가 내가 가진 엄마로서의 능력을 평가받는 것 같기도 하다. 관건은 얼마나 빨리 이 울음을 멈추게 하느냐다.
일단 공갈 젖꼭지를 물려본다. 입에 뭐라도 물리면 안 울지 않을까, 아니 울지 못하지 않을까. 입에 물어주면 좋으련만 고개를 돌려 피한다. 그럼 장난감으로 아기의 흥미를 끌어본다. 인형을 요리조리 흔들어보고 이런저런 소리를 내봐도 아기는 울음을 그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일단 말이라도 해보자.
"쉿! 여기서는 시끄럽게 울면 안 돼. 조용히 해야 돼, 조용조용."
하긴 아직 돌도 안 지난 아기한테 이렇게 말해봤자 알아들을 리 없다. 그래도 사람들이 방금 이 말을 들었을 테니 이 정도면 내가 아기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여러분에게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건 알아주겠지? 이런저런 시도 끝에 다행히 울음을 그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웬만하면 안 쓰려고 했던 그 최후의 방법을 썼다. 유튜브 창업자에게 오늘도 감사하다.
그런데 문득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하다. 어딘가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지금 하려고 한 건 뭐였을까. 아이를 안고 달래줬는데 나는 울음을 멈추는 게, 이 아기를 조용히 만들려고 한 거구나. 이 아기가 조용해져야 내가 덜 눈치 보이니까... 그래야 내가 편하니까...
2.
아기는 왜 울까. 아기라서 우는 걸까.
사실 아기의 울음소리는 그 자체로 메시지다. 보통 그 메시지에 담긴 의미는 아기의 생존과 안전에 관련한 것들이다. 아기는 배고플 때 울고 추울 때 울고 더울 때도 운다. 졸릴 때도 울고 아플 때도 운다. 어른들이 자기를 봐주지 않으면 관심 가져달라고 울 때도 있다(아기 입장에서 어른의 관심은 곧 생존의 문제일 테니까).
아무튼 아기 울음소리를 별 의미 없는 '소음'쯤으로 생각하면 그 울음 소리는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아기 울음소리를 '메시지'로 받아들인다면 그 울음은 아주 중요한 정보이자 상호작용의 시작이다.
만약 누군가가 우는 아기를 단순히 조용히 하려는 목적으로 달래고 있다면 그 아이는 울음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는 아기를 뭔가가 필요한 상태로 이해하고 아기가 지금 울음을 통해 말하고 하는 게 뭔지, 요구하는 게 뭔지, 지금 아기한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알아채려 한다면 아기는 금방 괜찮아질 것이다.
그러니까 아기가 응애응애 운다는 건 뭔가가 지금 불편하다는 거고, 엄마아빠는 아기가 지금 뭐가 불편할지 열심히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보살펴줘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기가 배고파서 울 때 기계적으로 분유통을 입에 물리는 게 아니라, 이 말을 다정하게 덧붙여야 한다.
'아이고, 배고팠구나 우리 아기'.
말을 알아듣든 못하든 이렇게 엄마 혹은 아빠가 너의 울음을, 표현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그 말.
'힘들었겠다.'
'서운했을만해.'
'원망스러웠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는 이 말들은 어쩌면 아기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생존에도 매우 중요한 한 마디일지도 모른다. 자기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지 못할 때 사람은 삶과 사랑을 이어갈 희망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