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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Dec 27. 2020

우리가 알아야 할 아동학대의 진실들 - 정인아 미안해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리뷰


이 책의 리뷰를 작성한 뒤 며칠이 지난 시점에 정인이의 비극이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방송되며, 다시금 온 나라가 아동학대 문제로 분하고 있다.


제발 이번에는 단발성 이슈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를..

사회와 우리가 지속적이고 바뀔 수 있도록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기를..

아동학대의 최일선에 서있는 경찰, 사회복지사, 어린이집 선생님, 의사들이 방관하지 않기를..

또 그들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적절히 이루어지기를..

마지막으로 '또 다른 이름의 정인이'가 발생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정인아 미안해.
우리가 바꿀게.




이 책은 아동학대로 짧은 생을 마감한 263명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5명의 기자들이 7년간 실제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들을 전수 조사하여 엮어낸 보고서이자,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책을 읽는 내내 분노와 슬픔, 탄식이 계속된다.

도대체 어떻게 어린아이들, 심지어 생후 몇 개월을 갓난아기들을 상대로 저런 학대를 할 수 있는지,
가해자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그들의 상황이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들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고통들, 경제적 물질적 어려움들, 어릴 때 본인이 당했던 폭력의 트라우마들... 어찌 보면 그들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이 사회가 낳은 피해자였다.
물론 상황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도 이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절대 해서는 안될 행동들이었고, 강력하게 처벌받아 마땅하다.

모든 케이스가 충격적이고, 안타까웠지만, 유독 한 사례가 나는 마음이 쓰였다.
9년간 방 안에 갇힌 아이. 10살의 나이에 109 센티미터 키에 7.5킬로의 몸무게로 생을 마감한 아이.
9년간 방에 갇힌 채로 움직이지도, 누군가와 얘기도 못한 채 어떤 느낌으로 이 세상을 살다 갔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리고 더더욱 충격적인 건 그 아이의 동생은 너무나 정상적인 아이로 자랐다는 것. 어떻게 부모라는 인간이 똑같은 자식에게 그렇게 행동할 수가 있는 것인지. 읽으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민이는 다리뼈가 부러진 뒤 방 한편에 누워 지냈다. 하루에 한차례도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날이 있는 등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지 않았다. 1년에 한차례 정도 목욕과 양치질을 시키는 등 피해자를 방치했다. 민이가 걷지도 못하고 말할 줄도 모르며, 영양 불량 및 위생 불량 상태에 있었음에도 민이에게 기본적인 음식물 내지 영양분을 공급하거나 병원 치료를 받게 하거나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다리뼈가 붙은 뒤에도 엄마는 민이를 일으켜 걷기 연습을 시키지 않았다. 말도 걸지 않았다. 밥도 잘 주지 않았고, 목욕이나 양치질도 시키지 않았다. 그렇게 오래 누워만 있던 민이는 어느 순간 그저 '누워있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민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꿈을 꿨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민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첫째 딸에게 음식과 물을 제대로 주지 않아 굶겨 죽인 엄마가 둘째에게는 동화책 2,000권을 읽어주고 옷도 깨끗하게 입히는 등 열과 성을 다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책에는 민이의 사례뿐 아니라, 도저히 인간의 행동이라고 믿기 어려운 수십 가지의 사례들이 나온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의 가해자의 대부분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고 믿는 것과 같이 계모 또는 위탁모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친부모로부터 발생(약 80%)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계모나 위탁모가 아동학대의 주범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을까?
책에서는 미디어에 그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미디어가 범죄 현실을 반영하기보다는 구성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대한 신문 기사가 현실성 있는 문제 집단에 대해 보도하기보다는 극소수 일탈자에 의한 병리적 행동에 초점을 맞추면서 친부나 친모가 가해자의 절대 다수인 실제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의 현실은 간과하게 만드는 결과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부모이거나 자식이다. 자식이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해한 뉴스를 보기 역겨운 것처럼 부모가  자기가 낳은 자식을 해한 뉴스를 보기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가 아닌 '그들'을 더 자주 단상에 세우는 건지 모른다. 그러면서 아동 학대를 우리의 문제가 아닌 그들의 문제로 보게 된다."


이 책은 다양한 케이스의 아동 학대 문제를 분석한 것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의 관점에서 복지사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문제들을 생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해진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마지막은 상담사들의 현실적 어려움들이 잘 나와있다.
아동학대 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최전선에 있는 상담사를 향하는데, 정작 그들에게는 그만한 권한도, 보상도, 지원도 없다.
반면에 그들이 겪는 심리적 압박감과 고통과 좌절감들은 그동안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그리고 누구도 제대로 알리고자 한적 없는 부분이다. 이건 우리 사회가 빠르고 철저하게 개선해나가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노력하는 하루하루가 쌓여 아이가 학대받지 않는 가정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 어느 하루 한 번의 노력으로 혁명을 꾀하는 작업이 아니란 이야기였다. 무리한 시도는 후유증만 더 크기 때문이다. 동시에 너무 애쓰면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눈물짓는 상담원은 1년도 버티기가 힘들다는 것을 그들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한 상담원은 자신이 관리하던 아이가 죽은 날, 슈퍼에서 소주를 사다가 길에서 혼자 마시고는 하늘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그의 후배 상담원은 학대하는 엄마에게서 아이를 분리한 뒤 오랜만에 아이를 엄마에게 보여주려고 집을 찾았다가 목을 매 숨져 있는 엄마를 발견하고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아동학대의 현주소이다.
이 책이 나온 지 4년이 조금 넘었다. 과연 지금은 그때보다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씁쓸한 책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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