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셋째 날"
방주(ark)는 약속의 상자다.
그 안에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이 담겨 있고, 방주는 그것들을 지키겠다는 약속이다.
꽃이 가득 담겨 있었을 것이다.
사람 안에도 꽃이 있다. 마음이라는 꽃이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다.
나는 새로운 상담소의 이름을 오래전부터 결정해놓았다. 빛을 받지 못하고 물을 만나지 못해 말라가고 뒤틀어지던 마음이 다시 환하게 마음꽃을 피울 수 있는 곳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품었다.
내가 선호하지 않는 것은 마음을 mind라고 쓰는 일이다. mind는 생각이다. 생명성을 묘사해주고 있지 않다. 그러나 생명성은 마음의 핵심이다. 마음에는 물론 인지가 포함되지만, 마음은 인지현상이기 이전에 먼저 존재현상이다. 실존심리학자들은 정확하게 마음을 존재현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이다. 이들 또한 mind 대신에 minding 등의 표현을 좋아한다.
그런데 우리말로는 이미 '마음'이라는 표현이 있지 않은가. 영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차라리 그냥 maum이라고 하는 것은 어떨까. tsunami나 satori 등과 마찬가지다. 더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을 굳이 더 협소한 표현으로 환원시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도를 담아 지은 이름이다.
방주는 이 maum이 꽃을 피우는 현실을 담고서 여행해간다.
방주 안의 분위기를 잠시 상상해보자면, 나는 그것이 신대륙으로 향하는 노예선과 같았을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항해에 지쳐 다들 침울하고 무기력하기는 커녕, 오히려 아주 싱그러운 활기가 넘쳤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마치 동무들과 무릎을 맞대고 시간가는 줄도 모르게 정답던 어린 시절의 비밀기지처럼. 그곳은 실시간으로 마음꽃이 피어나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결국 방주가 소중하게 지키며 옮겨가고 있던 것은 하나의 현실이다. 그것은 대화로 이루어지는 만남의 현실이다. 마음꽃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만남으로 피어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내가 만약 인류의 위기 앞에 방주를 만들어야 한대도 나는 상담소를 가장 먼저 그 안에 둘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소중하게 지키는 것은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 성공을 이루어도 그 눈빛이 서러운 것은 대화가 없어서다.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대화가 가능하다면 사람은 행복하다. 내가 진지하게 믿는 것은 이러한 것이다.
나는 이 만남의 현실이 우리의 문화가 되기를 꿈꾸고, 우리의 일상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아마도 방주는 출항하는 것이리라.
열셋째 날, 오늘은 비가 많이 왔지만 maum은 더욱 싱그럽게 피어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