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째 날"
세상에 없던 상담소를 만든다고 하다보니, 세상에 너무 없는 일이 생겨버렸다.
대홍수가 밖이 아닌 방주의 안에서 일어났다.
어제 설치했던 제빙기가 새벽시간 동안 오작동을 일으켜 얼음을 만들기보다는 끝없이 물을 방수하고 있었고, 결국 대홍수급의 재난이 일어났다. 가게 안이 다 물바다가 된 것은 차라리 낫다. 물이 새어들어가 아래층에 계신 음악스튜디오 사장님에게 커다란 폐를 끼치고야 말았다.
복구하는 데 필요한 비용도 정말 만만치 않지만, 처음 스튜디오를 내신 분의 입장에서 정성스럽게 한땀한땀 꾸민 공간이 이렇게 망쳐지게 되어 얼마나 속상하실지 짐작도 할 수 없다. 너무 죄송스럽다.
마음이 넓은 분이시라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우리의 사과와 제안을 받아주시고 큰 감정적 내색은 안하셨지만, 내 입장이었다면 이럴 때 나는 아주 많이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나쁜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피해가 발생하게 된 이러한 장면들은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이 혼자 떠안고 가야 하는 성질의 것이다.
사실 피해의 복구가 문제가 아니라, 선량하게 사는 이에게 왜 이처럼 속상한 일이 일어나는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리라.
우리의 입장에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원망할 곳을 찾아보기도 했다. 제빙기를 설치한 기사님이 혹시 무엇인가를 잘못했을 것인지, 방수가 안되는 이 공간의 구조가 혹시 잠정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닐지 등을 망상해보며,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한 음모론을 쓰고 있던 것은 분명 현실도피였다.
우리는 다만 희생양을 찾아내어 희생양에게 대신 우리의 괴로움을 뒤집어씌우고 순결해지고자 했던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다. 우리는 다만 바쁜 사람들이었다.
바빠서 제빙기를 아주 뜨겁고 습한 주차장 안에 한 달간 방치해놓았다. 폭염 속에서도, 폭우 속에서도, 제빙기는 그 무관심의 자리에 무언으로만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이제 입을 열어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시원하게 얼음을 뱉어내라고 우리는 요구했다.
끝까지 열심히 해보려고 했던 그 소리는 들었다. 어딘가 아픈 소리라는 상상은 하지 못해서, 우리는 정상적으로 얼음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12시간 동안 굳이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에어컨을 끄고 모두가 돌아간 그 새벽시간 동안 제빙기는 혼자서 열을 내고 있었을 것이다.
왜 예전처럼 얼음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지에 답답해하고 속상해하며 더욱 열을 내다가, 아마도 쓰러졌을 것이다.
우리는 바쁜 사람들이었고, 제빙기도 바쁘기를 요구받았다.
안부인사조차 나눌 시간을 갖지 못한 관계의 최후였다.
나는 분명 제빙기를 객관적 상관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우리의 심정을 제빙기를 통해 드러내보고 있는 것이다.
나쁜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다.
바빠서 우리는 조금 아파진다.
서른여섯째 날, 우리는 중요한 어떤 것을 다시 기억했다. 잊지 않기 위해 가장 바빠질 수 있는 드링크바 가운데에 나무를 하나 세웠다. 그것은 회복의 약속이었다. 아래층 사장님께, 또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찾아오시는 모든 분에게 전해가고자 하는 매일의 안녕을 위한 안부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