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온 심리학 #15

"살아있는 것의 소리를 듣는 것이 좋다"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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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요도리 사치코의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게 좋을 거야』라는 만화가 있다. 그 제목을 빌려와 나는 살아있는 것의 소리를 듣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싶다.


머리맡에서 할짝할짝 그루밍하는 소리, 천식기운이 있어 쌕쌕 내쉬는 소리, 잠결에 살짝 발이 닿으면 바로 고롱고롱하는 소리, 아침에 눈을 뜨면 지켜보고 있다가 냐옹 하고 인사하는 소리, 추운 겨울날 다 같이 뭉텅이로 누워있을 때 조금씩 하나로 겹쳐지는 그 고요한 숨소리, 이런 살아있는 것의 소리를 듣는 것이 좋다.


우주도 내가 살아있는 소리를 이렇게 듣고 있을 것이다.


깊은 요람이 되어 그 숨소리를 지켜준다.


이 작은 숨소리를 듣지 못해서 자신이 살아있다고 힘써 증명하려는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말할 자유에 대해서만 강조해왔지, 왜 들을 자유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던가.


들을 자유가 없다는 것은 귀가 닫힌 현실과도 같다.


새로이 들리는 것이 없으며 늘 자기 머릿속에 있는 동일한 내용만을 듣게 된다. 아무리 처음 듣는 소재라 하더라도 자동으로 그런 굴절과 환원의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 결과 종국에는 이 모든 것이 뻔한 것으로 경험된다. 세상은 아주 작고 지루하며, 자기는 세상에 대해 다 알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착각된다. 귀가 닫힌 감옥의 불감증이다.


이러한 이가 말할 자유를 행사할 때, 말해지는 것이라곤 자신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그 권태와 무감동일 뿐이다.


자기도 자기 자신이 지루하면서, 그러한 자신을 놀라운 존재로 알리기 위해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심지어 이런 일을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지루한 것은 지금 이 감옥 안에는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틸리히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의 첫 번째 임무는 듣는 것이다."


또 다르게 말하자면, 듣는 일은 사랑이 처음으로 자유를 행사하는 방식이다. 들을 자유를 통해서야 사랑은 이 세상에 최초로 현현한다. 그리고는 가장 가까이에 살아있는 것의 소리를 먼저 듣는다.


사랑이 나를 듣는다.


말할 자유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말하곤 한다. 그러나 들을 자유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듣는다.


그 숨소리를 듣는다.


내가 그 어떤 조건과도 관계없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사랑이 그렇게 들었다


내가 그 어떤 자격과도 상관없이 이미 살아있었다. 사랑이 분명 그렇게 들었다.


나는 나라도 괜찮았던 것이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그냥 나로 살아있어도 사랑은 그 소리가 듣기 좋다고 전했던 것이다.


이미 살아있는 것의 소리를 듣는 것이 좋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할짝할짝, 쌕쌕, 고롱고롱, 작은 숨소리와 함께 내 안에서 조용히 시작된 그것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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