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내가 심리학 교수라서 찾지 않는다.
이름이 좀 알려진 불교상담자라서 찾지도 않는다.
국내에 거의 없는 실존상담전문가라서 찾지도 않는다.
깨달음을 알고 싶고, 또 얻고 싶다고 나를 찾는다.
사람들이 나를 찾는 이유에 대해 심리학으로 대신 대답해온 것은, 그동안 내가 아주 많이 지치고 상처입어서다.
자기가 깨달은 척하는 광대들에게 나는 정말로 많이 착취되고 갉아먹혀왔다.
아무 재능이 없지만 유재석 같은 최고급의 연예인이 되려는 욕망을 품은 이들이 깨달음을 얻으면 자기가 무협지에서처럼 만인의 스타가 될 줄 알고 아주 고집스럽게 깨달은 척을 지속한다.
깨달은 이라고 보이는 누군가의 말투와 문체, 옷차림과 행동을 흉내내어 자기가 그 사람인 척하며 다른 이들에게 깨달은 이처럼 보이려는 광대짓을 그렇게도 계속 하려고 한다.
나는 아주 질려버렸다.
이런 사기꾼을 양산하는 일과, 사기꾼이 오히려 사기의 소재를 얻어 가짜권위를 강화하는 일에 한동안 적잖이 일조한 것 같아, 더욱 철저하게 심리학이라는 학제적 이름 속에서 말하고자 했다. 삼류광대로 사람들에게 사기나 치려는 헛짓거리 말고 성실히 학위를 얻고 논문을 쓰며 공부하도록 안내하고자 했다.
그러나 나는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의 욕구만을 채워주는 도구로 착취되고 있던 것이다.
'그들의 욕구'란 무엇인가?
자기을 억누르고 비판할 어떤 제도권의 꼰대 같은 대상을 만들어 자기의 반대편에 세우는 일이다.
그런 '악역'을 반대편에 놓음으로써, 그들은 자기가 자유민주주의의 해방전사라도 되는 것처럼 연출하는 일을 비로소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허황된 망상이나 품으며 사기칠 생각말고 정직하게 살라는 그들의 부모에게 반항하여, 그들이 자기의 허구적 정체성을 형성했던 방식과 같다.
그럴 때 그들은 자신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단지 부모가 가로막고 있거나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그 모든 일이 안되는 것처럼 거짓의 그림을 만들며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다. 실은 자신에게 재능과 능력이 없어 그 욕망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철저하게 회피되는 것이다.
즉, 자신이 자기 인생에 책임지지 않고 그 책임을 어떤 악역에게 돌리는 방식을 이들은 발달시킨 것이다.
그렇게 자기가 악역으로 지정한 이에게 자기의 모든 쓰레기, 자기의 모든 부정적 모습을 대신 뒤집어씌우고는, 이들은 사람들 앞에 자기가 대단히 선하고 친절하며 가장 자유로운 존재인 척을 한다.
마치 드래곤볼의 기뉴가 바디체인지를 하듯이, 부정적인 자기의 모습은 상대에게 넘기고, 자기는 그 상대의 모습을 자기로 삼는 것이다.
깨달은 척하는 일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 방식의 희생양이 되어 그동안 영혼의 밑바닥까지 착취되었던 것이다. 몸의 건강도 아주 많이 잃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이 착취자들이 자기가 자행한 짓에 대해서는 시치미를 뚝 뗀 체 사람들에게 다정한 마음의 스승인 척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이들이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기 위해 주로 활동하는 무대가 심리학이라는 점은 나를 더욱 지치게 한다.
그러나 심리학이라는 이름은 어느새 이런 광대와 사기꾼들이 득세하는 전당이 되어 있었다. 오히려 그들이 더 지배적인 세력이었고 기득권층이었다.
오늘날 심리학이라는 이름은 아주 오염되어 있었다.
그런 줄을 나는 정말 몰랐다. 이제야 알았다.
사기꾼들은 자기들이 가짜권위를 얻기 위해 심리학이라는 이름을 필요로 한다. 칼 세이건이 지적한 것처럼 오늘날 과학의 이름이 남용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나는 오히려 그 이름을 버린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은 원래 아주 무거워서 버리기가 힘들다. 나는 내가 직접 쌓아온 것이라 더 가볍게 버릴 수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나를 찾는 이유에 더 분명하게 답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존주의와 심리학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실존주의다.
선(禪)과 심리학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선이다.
깨달음과 심리학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깨달음이다.
이 정도로 분명했던 것이다.
제일 잘하고 자신있는 것이라서가 아니다. 그 정도 말로는 부족하다.
이미 나의 생활이 되어있는 것이라서다.
실존주의, 선, 깨달음, 이는 일상과 다르게 추구하고 있는 어떤 활동이 아니라, 그것들이 내 일상이다.
나보다 이것들을 더 사랑할 사람은 없다.
그 사랑을 나보다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만약 있다면, 나는 그를 제일 사랑할 것이다.
그의 제자가 되어, 어린왕자를 찾는 여우처럼 매일 반가울 것이다.
결국 나는 무엇을 그리며 이 삶을 살고 있는가.
나보다 더 깨달음을 사랑할 사람을 그린다.
그럴수록 그 사람이 나로서 자꾸만 드러난다.
나는 이 미친 현실을 너무 사랑한다.
나는 이 미친 현실이 증폭될 힌트도 얻었다.
깨달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함께 있으면, 그 모두에게서 나는 엄청난 크기와 속도로 꽃망울을 틔워간다.
사막이 꽃밭이 되는 마음의 기적은 진실로 가능한 것이다.
이걸 해보고 싶다.
후천개벽 시대라고도 말하는데, 깨달음을 사랑하는 이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단지 앉아서 대화만 하고 있을 뿐인데 터져나오는 존재의 대폭발을, 어떤 새로운 우주의 빅뱅을 보고 싶다.
존재의 대혁명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
나는 너무 기뻐서 울다가 죽을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 미친 행복을 말도 안되게 다 누리다 간다고 마음은 환희로 빛난다.
나는 깨달은 이가 아니다.
마음이 깨달은 나다.
나는 깨달은 적도 없고, 깨달을 필요도 없었다.
다만 존재했다.
깨달음을 사랑한다는 것은 다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전부가 지금 그렇다.
눈물이 흘러 감사한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