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온 마음 #32

"몸의 뜻"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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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짜증날 때를 보면 나는 늘 몸에 대해 짜증내고 있었다.


몸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짜증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던 바로 그것이 몸의 뜻이었다.


그리고 몸의 뜻은 언제나 내 뜻보다 더 지혜로웠다.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환경이 변했던 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을 때다.


그러니 몸은 적응의 시간을 갖고자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적응되지도 않았는데 무리하게 움직이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기에.


계절이 바뀌고 날이 갑자기 추워지면 생각도 잘 안돌고 그 전까지 자연스레 할 수 있던 일들도 이상하게 잘 되지 않아 짜증이 나곤 한다.


그럴 때 몸이 적응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는 것을 이해하며 몸에게 맡기고 있으면 된다.


쉼에 대해서 우리가 오해하는 것은 움직일 때와 쉴 때를 우리가 주관한다고 상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충분히 쉬었다고 판단되는 데도 불구하고 일들이 여전히 잘 안되는 것 같을 때 우리는 더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정도면 충분히 쉬지 않았냐고 하는 것은 몸이 판단할 일이지, 우리의 생각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


심지어 환경의 변화로 둔해진 생각이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을리는 더욱이 없다.


생각은 그저 늘 하던 관성대로 모든 것이 똑같이 되어야 한다며 어떤 가상의 안정성에의 고집을 부리고 있을 뿐이며, 바로 그것이 생각의 특성이다. 한 번 자신이 생각한 어떤 안정된 패턴이 깨져서 불안을 경험하면 짜증내고, 그 결과 더 불안해지고, 다시 더 짜증내곤 하는 이 힘겨운 반복은 우리가 생각에 전적으로 위탁해서 살아갈 때 생겨난다.


생각은 절대로 불안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이었던 적이 없다. 불안에 대해 가장 무력한 것이 생각이며, 오히려 더 불안을 키우기까지 하는 것이 생각이다.


많은 것이 변화하는 속에서도 유연한 적응의 힘을 통해 우리의 불안을 정말로 안정되게 만들어줄 것은 우리 자신의 몸뿐이다.


실제로 몸을 신뢰하고 사는 이는 불안해도 불안하지 않다. 불안과 함께 자연스레 사는 법을 터득한다.


몸이라는 것이 이미 불안과 더불어 살고 있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은 언어작용이다. 생각으로 사는 이는 고급언어들을 통해 자기가 성숙한 사람인 척 꾸며내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불안에 대해 그 포장지는 너무나 취약하다. 후 불면 바로 날아가 짜증의 민낯을 드러낸다. 마치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 부모에게 억지를 부리는 두려운 아이의 얼굴처럼.


생각으로 사는 이는 불안이 다가오면 그 앞에서 쭉정이처럼 가련하게 흩날리기 그지없다.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으려는 것은 이처럼 우리 자신을 가엾게 흩날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불안할 때면 자신에게 기대라고 몸이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어쩌면 우리는 기댈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기대도 결국에는 뿌리 끝까지 흔드는 이 북풍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라고, 기댄 그 뿌리째로 뽑혀 결국에는 같이 날아가게 될 것이라고 절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몸은 고개를 저으며, 더 아래를 향한다.


아무리 매서운 회초리를 든다 해도 가장 바닥에 눌어붙어 꿈쩍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 몸은 지금 땅이다.


몸은 생명의 뿌리를 지키기 위해 땅이 되었다.


움직일 의지 자체가 없다.


아니, 절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의지 자체다.


너를 반드시 지킨다고 말한다.


추운 겨울날 이불 밖으로 우리가 쉬이 나오지 못하게 되는 일에도 이처럼 몸의 큰 뜻이 있었다. 침대 옆에서 팔짱을 끼고 서있는 엄마에게도 알려주면 좋을 것이다.


나는 지금 몸의 큰 뜻 속에 있다고.


그 몸이 그렇게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는 엄마의 얼굴에 짜증을 넘어선 분노가 번져갈 때, 그로 말미암아 세상에 열이 많아졌을 때, 그때도 우리는 몸을 신뢰해야 할 것이다.


몸은 이제 봄바람이 되어 나풀나풀 문 밖으로 날아간다.


너를 반드시 지킨다고 말한다.


나는 지금 몸의 큰 뜻 속에 있다.


몸은 이처럼 언제나 우리 자신을 위한 가장 큰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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