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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Feb 26. 2024

세상에 없던 상담소를 만들어보자 2nd

"프롤로그"




  상담자로서의 시간이 무르익었다는 것을 실감할 때는 보통 두 경우다. 내담자로 처음 시작했던 인연을 이제는 동료상담자로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리고 수련생으로 지도받던 이가 자신의 상담소를 내게 되었을 때다.


  이것은 어떤 감동적인 졸업스토리 같은 것이 아니고, 긴 노력의 시간 끝에 한 사람의 당당한 상담자로서 인가받게 된 무협지적 내러티브가 아니다.


  이것은 다만, 마음의 꿈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위대한 약속의 실현일 뿐이다.


  상담자는 자상한 엄마처럼 다독다독해주거나 놀라운 마음공식을 가르쳐주는 이가 아니라, 마음의 꿈이 아름다운 원래의 모습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돕는 이다.


  그러니 상담자가 되고 싶은 이는 자신의 마음의 꿈을 먼저 이루어야 하는 일이 당연하다.


  자신이 자신의 마음을 무시하거나 회피하고 있으면서, 내담자의 마음을 긍정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긍정한다는 것은 다 알아준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결코 아니다.


  "내 새끼 말이 맞아. 우쭈쭈." 이러한 식으로 상담자가 내담자의 말을 긍정하는 일에는 거의 아무런 효용이 없다. 특히 내담자가 말하는 스토리를 긍정함으로써 오히려 내담자가 경험하던 원래의 마음이 부정되는 일은 빈번하다.


  언어라는 것은 언제나 반쪽인 까닭이다. 내담자의 언어적 보고는 반쪽의 입장에 대한 서술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서술은 거의 대부분 면피의 의도를 위해 작동한다. 자신이 얼마나 순결하고, 책임이 없으며, 무고한지만을 마치 법정 앞에서 진술하듯이 이루는 보고들이다.


  그러니 상담자가 이러한 내담자의 말을 긍정할 경우 이것은 자연스레 내담자 착취의 현실이 된다.


  왜 그런가?


  상담자는 지금 자신이 판사의 역할을 하겠다고 동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판사가 된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는 이제 명백한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상담자가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권력은 작동한다. 내담자는 마음의 꿈을 이루는 일에서 완전히 멀어져 다만 올바른 판결을 기다리는 입장이 된다.


  마치 자기가 우주에서 제일 자비로운 엄마인 척 내담자의 말을 무조건 긍정하겠다고 하는 부류의 상담자들은 이러한 현실에 자주 놓이게 되는데, 이는 사실 상담자들 자신이 지향했던 바이기도 하다.


  자신이 가장 강력한 권위자로 보이고 싶어하는 이들은 언제나 반드시 다른 이의 입장을 자기만은 알아주겠다는 황희정승 같은 스탠스를 취한다. 그래야 내담자로부터 권위를 양도받을 수 있어서다. 포퓰리즘의 원리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내담자의 마음이 아니라, 상담자 자신이 된다. 내담자가 그 자신의 마음의 꿈을 이루는 데 써야 할 그 힘과 권위를 상담자가 대신 갖게 되는 것이다.


  내담자의 마음을 긍정하는 일이 이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상담자는 사이비판사가 아니라, 차라리 비유하자면 화가다.


  내담자의 마음을 긍정하는 법은, 내담자의 마음의 풍경을 그려내는 일이다.


  "참 쉽죠?"라며 현재 드러나있는 일상의 소재들로 슥슥 아름답게 풍경을 그려내는 밥 아저씨는 특히 실존주의 상담자의 좋은 비유적 모델이다.


  그러한 풍경 자체가 꿈을 담고 있다.


  풍경은 이미 꿈의 반영이다.


  내담자는 바로 그러한 풍경을 실현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활로가 막혀서 고통받게 된 것이다.


  활로가 막히게 된 이유도 그러나 분명하다.


  아직 다 그리지 못해서다.


  또는 마음이 드러내는 풍경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적당히 선별적으로 그린 뒤 나머지는 자기 생각으로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억지의 그림을 만들고 있어서다.


  우리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마음의 풍경을, 그 풍경에 담긴 마음의 꿈을 우리는 있는 그대로 이루기로 했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사기치거나 속이지 않는 정직한 그 풍경을.


  오직 아름다울 뿐인, 그래서 지나가던 이들도 잠깐 멈춰서서 돌아보며 그 그림 속에 자신의 마음의 아름다움을 비추어볼 수 있는 바로 그런 풍경을.


  우리는 그리기로 한 것이며, 나는 돕기로 한 것이다.


  나는 그러려고 세상에 온 것이다.


  마음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일이 내가 사는 기쁨이어서.


  이것은 단지 아주 오래되고 진실된, 그 위대한 약속의 실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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